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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광풍일기(눅8:22-25)
설교자 김충만 목사님(20070228-사랑의교회)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누가복음 말씀을 같이 나누면서 마태복음 말씀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마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7:24부터 보겠습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24절처럼 살아도 25절이 있습니다. 물론 26절처럼 살아도 27절이 있지요.
26절처럼 살면 당연히 27절이 있을 거라고 하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24절처럼 사는데도 25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팔복으로부터 시작된 주옥같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고, 들었을 뿐 아니라 행하는 사람들에게도 25절처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부분에서 넘어집니다.
또 하나는 비와 창수와 바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들어오고 헌금도 내고 봉사도 하고, 기도도 하고 말하자만 내 삶에 비, 창수, 바람이 나를 엄습해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쨌든 24절처럼 살아도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분다는 사실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문으로 돌아오면 누가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전도순례를 기록하면서 1-8장까지 제자들이 무수한 말씀을 들었고 무수한 기적을 보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동거동낙하면서 그분 곁에서 제자훈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마태의 증언처럼 주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로 그것도 그리스도의 두제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분곁에서 그분과 함께 복된 양육을 받으면서 제자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인생의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러합니다. 예수 믿기 이전에 고난과 고통과 좌절과 눈물과 아픔 속에 있었어요. 그러나 예수를 믿고 기쁨이 찾아왔고 구원의 감격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에서 눈뜰 것을 확신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붙들려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의 노정에 쉼 없이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기대하든 기대하지 않든 내가 기도하든 기도하지 않든 내가 교회를 열심히 섬기든 섬기지 않든 내가 새벽제단을 쌓든 잠을 자고 있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안에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속한 시민에 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같이 끊임없이 우리 인생의 노정에 광풍이 불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의 광풍일기를 한 대목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한다고 해도 광풍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배안에 있어도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면 배 안에 있어도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광풍이 불면 예수 안에 있어도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것이 제자들의 오늘 본문의 실존이고 오늘 저와 여러분의 실체입니다.
제자들은 본문에서 그들이 만난 광풍 앞에 뭐라고 반응하냐하면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근데 오늘 누가복음의 누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위태한지라. 누가는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종군기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가 보기엔 위태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삶의 그림 속에 그 광풍이 잠깐 위태할 뿐이지만 제자들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이 제자들의 반응과 누가의 증언과 이것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나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광풍하고 믿음이 만나고 있습니다.
얼른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이 본문을 보면 어렵습니다. 광풍하고 믿음이 만난다.
오히려 이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베드로 너 지난 번 구명조끼 12개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베드로 너는 배 왼쪽 안드레 너는 왼쪽 빨리 바가지로 물 퍼네. 빌립 너는 핸드폰 쳐서 헬리콥터 불러. 유다 너는 빨리 119쳐.
이런 일기가 훨씬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근데 광풍에 휩싸여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바다를 꾸짖고 계십니다.
어렵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고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연약함을 주님이 교정해 주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복음서를 읽다보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 사건이 기록되어지는 전형적인 하나의 패턴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 앞에 서면 예수님은 항상 이걸 묻습니다. 너희에게 믿음이 있느냐? 물으면 네 믿습니다. 하면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러면 믿음대로 되는...
근데 오히려 오늘 본문에는 제자들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믿음이 아닌 반응만 보였는데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에게도 여러분의 인생의 노정에 불어오는 문제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저에게도 제 인생의 광풍일기가 있습니다.
근데 제 인생에도 믿음이라는 키워드가 발견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똑같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슬퍼하면서 그 문제 속에 믿음을, 그 문제 속에 믿음이, 그 문제 속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내 안에 불어온 광풍을 일격에 하나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부분이 없습니다.
바울은 그 광풍 앞에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롬7장
이미 사도가 된 시점. 이미 로마서를 기록할만큼 진리의 사람,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도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그 집을 반석위에 짓는 지혜로운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도 어김없이 비와 바람과 창수가 불어왔습니다.
롬7:14~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것이 대사도 바울의 고백이고 간증입니다.
그는 로마서를 기록할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붙들린 하늘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죄의 파도 앞에 자신이 침몰할지도 모르는다고 위기를 느꼈고 그래서 자신이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누가 나를 여기서 건줘줄까 고백합니다.
그러나 반전 ...... 8장 결코 정죄함이 없다.
자신 안에 이 두 법이 싸우고 있어요.
광풍이 불어오고 문제가 엄습하고 여전히 죄의 문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렵게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 문제 속에 여전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죄함이 없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우리 모두에게 그 숙제가 있습니다.
때로 아들에게 불어와는 광풍 때문에 때로 배우자에게 들어오는 광풍 때문에... 내 인생에 불어오는 광풍 때문에... 주의 말씀대로 살고 성령에 이끌려 살면 살수록 바울처럼 내 삶도 여전히 광풍 속에 노출되어있는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문제를 구명조끼로 바가지로 돈으로 유력한 사람 찾아간다고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이 불어온 광풍 앞에 죽음을 생각하고 위태한 인생의 고난과 고비 속에 처해 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어떤 것을 요구하신 것도, 그들의 얄팍한 믿음의 수준을 질타하신 것도, 그들이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 걸어다니는 하나님과 동거동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태할 것에 불과한 광풍 앞에 죽음을 생각할 때 주님은 그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주님이 저와 여러분도 찾아오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믿음 없는 자요 본질상 진로의 자였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사람도 아니고 우리 스스로를 득도하고 무아의 경지로 오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면 설수록 여전히 무능하고 조그만 광풍 앞에 여전히 아무런 믿음의 증거도 나타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주님만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꾸짖지 않고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오늘 이 밤에도 물으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조그만 광풍 앞에 주님이 기대하시는 그 아름다운 복된 영광스러운 우리 인생의 그림이 주님의 원하시는 작품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가는 연약하기 연약한 우리를 바라보시며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물으십니다.
오늘 이 밤에 주의 부르심 앞에 여러분들의 광풍일기는 주님이 제시하시는 믿음이라고 하는,
새로운 믿음이라고 하는 그 앵글에서 여러분의 일기가 복되고 영광스럽게 기록되어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광풍일기에는 믿음이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일기를, 누가 여러분의 인생의 작품을 주도해 가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인생의 광풍의 일기를 새롭게 새롭게 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개인적으로 묵상하면서 저에게 불어온 광풍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이 광풍 앞에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으로 반응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능하고 연약하고 오늘 이 말씀을 나눌 자격도 없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지극히 연약한 불충하는 믿음 없는 자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요 그래서 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소망이 없고 나에게는 가능성이 없지만.. 주님만을 바라보면 주님만을 의지하는 그것에 소망이 있는 것을 압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자신의 인생을 승부해 갔던 수많은 선배들은 자신들에게 불어온 광풍 앞에 자신들의 신앙을 다음의 찬양을 눈물로 간증하며 그 찬양 속에서 위로를 받았으며 그 광풍을 이겨나갔던 모습들을 봅니다. 이 찬양의 고백으로 이 찬양의 눈물로 그 광풍일기를 새롭게 새롭게 비져 갔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을 보면서 신앙의 믿음을 담아 부릅시다. 5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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