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5: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41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느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와 온 회중 앞에 끌어왔고... 여호와께선 모세에게 이르시길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했다. 그리고 여호와께선 그들이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그들을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말고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 내용은 어제 퇴근길에 읽은 내용의 일부랑 상통한다. 근데... 이 책엔 중요한 다른 부분이 더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예수님에 대한 부분이다. 행10장을 언급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접근에서 구약 율법의 폐기가 아니라 완성을 본다. 하나님은 속에서 성을, 부정한 것에서 정한 것을 구별해 내심으로써 세상을 '거룩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성화의 원리를 폐기하지 않으시되 그 근원을 바꾸셨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내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부정한 세상 속을 활보하며 거룩함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자비를 베풀기 위해, 오염을 기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름받았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정한' 자를 정하게 할 수 있다.....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중 일부-필립얀시

근데... 오늘 말씀 이후 예수님이 오셨고 그분이 오심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해 이전 것들이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그분은 더 이상 위에 돌로 쳐죽여야 할 사람을 돌로 징계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그분의 방법이셨다. 그리고 그분의 이 방법을 당시 살고 있던 율법학자들은 받아드리기 너무나 어려운 부분이였겠고... 허나..  그분이 이런 방법으로 인해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다. 
은혜의 보좌앞에... 하나님 앞에 아무나?? 나갈 수 있는 길을 그분이 열어주셨다.
말로 잘 표현이 안되지만.. 오늘 큐티를 통해서도... 일관성 있게 나를 가르치시는 그분을 느끼게 된다. 내 무지함을 깨우쳐 주시는 그분의 열심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늘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 그것이 분명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도 깨라고 하실 땐 그것을 고집하지 않고 깰 수 있는... 그래서 언제든지 그분의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드릴 수 있는 적어도 그분의 말씀에만큼은 팔랑귀?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잘 표현이 안되지만... 하나님이 요즘 제게 가르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낍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게 얼마나 필요한 부분이였는지도 느끼게 됩니다. 왜 하나씩이라고 하셨는지도 이해가 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억지를 싫어하시는지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억지로 저를 끌고 가지 않으시고 제가 즐겁게 따라갈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이라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어제 정말 뜻하지 않게(??) 최낙준목사님을 잠깐 뵙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정말 반갑다고 하시는데... 그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사실 그분은 적어도 내겐 가장 거리감이 없는 목사자이시자 나름 나를 가장 잘 알아주시는 편이셨고 게다가 나를 실제의 나보다도 더 과장되게 봐주시는 분이기도 하셨다.
근데... 어제 대화 중... 그분의 걱정어린 표정이 마음에 남는다. 그분은... 내가 다소?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물론 내가 잘못 본 것일수도 있지만...) 근데 나는 내가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내가 걱정스럽지 않다. 근데.. 그분의 내가 객관적으론 걱정스러워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걱정의 근원?이라는 것도 애정을 가지셨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되고...
내가 그분을 좀더 안심시켜 드려야 한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건 내 어떤 말로든 쉽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하기사... 그러고 보니..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누군가를 볼 때... 특정한 일면만을 보고서... 그들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도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나타나는 안타까움이나 걱정... 
근데... 어제를 통해서 느끼는 건... 하나님 보시기엔.... 전혀 특정한 일면이... 그것이 모든 사람이 걱정꺼리라고 생각하더라고... 그건... 그닥 걱정스러움도 안타까움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그들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그분이 전혀 걱정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모라고 오바하면서까지 걱정하겠나 싶다.
그래서 난 그들이 전혀 걱정스럽지 않게 됐다.
모두가 위험해 보인다고 하는 .... ... ***
모두가 그 .. ... ...... 생각하는 ***
그리고 ***도 ***도...
그리고 나도 내가 전혀 걱정스럽지가 않다.

결국 상황이 우릴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였다. 상황은 우릴 걱정하게 만들만한 능력이 없었던 거였다. 그걸 비로소 느끼게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