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이러저러한 계기?로 큐티에 대해 나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난 큐티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내가 대학부때 큐티예찬론자였던 이상#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는 후배들을 보면 하는 질문이 "너 큐티하니?" "큐티해라"였었다.
그렇다고 그 선배의 말을 들어서 내가 했냐? 난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 후배는 아니였나 보다. 일종의 잔소리로 생각하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넘겼으니깐... 그리고 당시엔 그다지 큐티?가 대중화??되어 있지도 않았을 때였고...
하긴.. 아주 간혹이지만 큐티책을 구입해 본 적은 있긴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늘 너무나 깨끗하게 잘 보관되는 것에서만 그쳤고......

근데...... 내가 어떻게 큐티를 하게 되었나 그 동기를 생각해 보니... 어쩌다... 그야말로 어쩌다라는 표현이 어쩜 정확한 표현이겠다 싶을 정도로 대단히 뚜렷한 동기?는 전혀 없었다.
고등부 교사를 하던 당시에 인터넷상 중고등부까페가 있었고 당시 인터넷상에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가 큐티방 만드는 것 제의가 있게 되면서 근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내가 하자고 건의했던 것 같긴 하다.(내가 써놓았던 옛날 글을 검색해 보니... "몇 달전(9. 5.) 중고등부 사이트 <건의합니다>방에 건의사항을 하나 올렸다. 큐티 나눔 방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함께 큐티를 통해 말씀을 나누고 싶은 기대에서 한 건의였다. 내 건의사항은 9. 11. 드디어 그 방을 맡아서 운영할 자원자가 등장하므로 반영되었고 본격적?인 큐티는 9. 18.부터 시작되었다...이하 생략..."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시작했군. 년도를 정확히 기재안해 놓긴 했는데 아마도 2000년도인 듯 싶다. 
그런 이후부터 나름 한 성실, 한 책임감 하는 내가 꾸준히 아이들이 한 명이 읽던 아무도 안읽던... 여하튼 멈추지 않고 계속 했던 것 같다. 때때로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였지만... 그럼에도 어쩌다... 꾸준히는 하게 되었었다.
(이 글을 쓰면서 어쩌다라는 말을 참 유용?하게 많이 쓰고 있긴 한데... 옛날 내가 좋아라 하던 정승#간사님이 그러셨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겐 우연이란 없다고... 난 그 말이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난 지금 그냥 표현상만 어쩌다라는 단어는 쓰고 있다.)
온라인상의 큐티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오프라인상의 큐티 시작은... 음... 이것도 검색하니 자세히 내가 기록해 둔 것이 있군.
 "교사 7년차 때 - 지난 연말부터 은연중 기도제목 하나가 아이들과 스터디하는 것였다. 마음만 있을 뿐이였다. 하곤 싶지만 시간투자할 생각을 하니... 망설였다. 그러면서 지금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근데 느닷없이 총무선생님 왈 "성경공부를 자원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선생님을 붙혀달라고 하는데 한 번 해 보시겠어요" 물으신다.(그날 난 교사회의도 못들어 갔다. 오랜만에 온 아이가 있었는데 교회를 그만다니겠다는 선언을 했기에... 아이 이야길 열심히 들어줬다. 몇 달이 지난 후 난 쪽지를 받았다 그 아이로부터...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라는 말씀이 적혀있었다.) 총무선생님의 질문에 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3 or 4월? 뭐 그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근데 난 첫모임부터 실망했다. 한 아이왈 "선생님 고3이 2명이나 있으니깐 조금 하다 그만하죠." 말하는 거였다. 시작도 안했는데... 자원하는 아이들이 정말 말씀을 함께 나누려는 모임이라는 말을 듣고 시작했는데(사실 난 그 자원이란 말 때문에 시작한건데).... 실제 이 모임은 들었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모임이름이 분명 큐티모임인데... 아이들 중엔 큐티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큐티를 안하고 있는 아이가 거의 다였다.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나로썬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괜히 한다고 했군.... 계속 후회했다. 더욱이 좀 쉴수 있는 토요일 오후시간을 청년부도 안나가고 있던 내가 그것도 왕복 2시간 반을 걸려 매주 나가야 한다는 것이.... 고3아이 2명과 상의했다... 너희들이 언제라고 그만하고 싶다면 난 그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쁨 맘으로 OK할꺼라고... 그랬더니 그 아이들왈 계속 하잖다. 어쩔 수 없이 난 너희들이 단 한명이라도 하자고 한다면 그 한명을 위해서라도 나오겠다고 약속을 해버렸다.(이하 생략)"

이런 식으로 난 큐티라는 것을 꾸준히 하게 됐다. 사실 오프라인상의 큐티는 그 모임이 큐티모임이긴 했으나 큐티를 하고 오는 아이들이 없어서... 한주간 했던 큐티를 나누는 모임이였다기 보다는 그날 만나서 본문을 읽고 묵상한 후에 나눔을 갖는 그런 시간이였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통해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때 그 아이들이 바로 이창준군, 김영숙양, 최중호군이다. 그리고 비록 얼마되진 않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들과 난 큐티나눔을 가지고 있고.......  

(음... 글을 너무 길어지겠군.쩝)


그후로도 특정인으로부터 큐티를 배운 적은 없었지만... 난 내 필요?에 의해 큐티에 관한 책들을 찾아서  읽으면서 공부?라면 공부는 하였었다. 제목까진 잘 생각이 안나지만... 아주 유익한 큐티관련 서적들이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난 큐티를 하면서 에제르님 말씀하시는 귀납법적 성경공부식으로 큐티를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즉... 그 당시 그 말씀을 직접 들었던 그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긴 보다는 지금 나한테 주시는 말씀에 포인트를 맞추면서 큐티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전자를 아예 배척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대부분을 큐티할 때 내게 주시는 말씀에 포인트를 맞췄었다. 나는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워드치기를 하면서 큐티를 하는데... 뭔가를 생각하고 묵상한 후 기록을 한다기보다는... 워드치기와 동시에 난 저절로?? 생각이 정리되는 편이다. 그야말로 처음 말씀을 읽을 땐 뭔가 느껴지는 것도 깨달아지는 것도 없는데... 다 하고 나면... 비로소 뭔가를 느끼고 발견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난 이점을 참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게 늘 생각한다. 전도사님들 중에 나한테 선생님은 큐티의 은사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던 분들이 계셨었는데... 나도 이점은 인정한다. 내 큐티가 은사의 일종이라고...... 잘난 척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큐티가 은사라고 난 느낀다.

큐티를 하면서 큐티를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 먹었던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큐티 말씀이 나한테 주신 말씀이 아님에도 내가 그저 착각에 빠져 직통계시?를 받은 양 착각하고 듣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내게도 신앙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힘든? 경험이 있었다. 

2001. 12. 16.  어떤 집사님께서 나한테 본인이 이번에 대학부 부장을 맡게 되었는데 그동안 대학부 간사를 하던 배##선생님께서 사정상 못하게 되셨다면서 나한테 대학부 간사일을 맡아주길 요청하셨다. 그 분 말씀이 기도하고 응답?으로 생각난 사람이 나라고 하셨었다. 그러니 나한테 기도를 해보고 결정해 달라고... 대학부 간사라... 그동안 대학부 간사는 그냥 나처럼 평범한...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였었다. 늘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교수님들이 맡아서 하시던 직분이였다. 근데.... 바로 그 높게만 느껴졌던 그 일을 나한테 맡아달라는 제의였었다. 그래서 상당히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근데 매일매일 어째 큐티말씀이 나를 더 혼란?스럽고 고민?스럽게 만들었었다. 그에 대해 큐티했던 내용들을 잘 저장해 놓은터라... 지금도 당시 말씀과 내 느낌들을 다시 찾아볼 수 있는데... 여하튼 내가 날마다 큐티말씀을 통해 들었던 것은 니가 그 일을 하라는 것이였었다. 그리고 가부를 말씀드리는 날 큐티제목은 누군가 나를 부를 때였다. 당시엔 새벽나라로 큐티를 했었는데 그곳엔 주일날만 그랬나 여하튼 하루는 Practice가 명시되어 있었는데... 그날 Practice로 적혀 있던 말 중에 하나가 교회의 요청을 받아드리기라는 것이였다. 나는 내 주제에 아주 넘치는 그 직분을 받아드리겠다고 승낙?을 했다. 가장 큰 이윤 하나님이 나한테 매일매일 말씀으로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는 것과 그 다음 이윤 난 솔직히 그 일을 참 하고 싶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높은? 직분이 탐나서라기 보다는 내가 좋아라 하던 아이들이 고등부에서 대학부로 다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대학부를 정말 따라가고 싶었었다.
근데... 문젠 나의 승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이미 주신 말씀들로 인해 순종한답시고 승낙을 하였는데...... 나를 너무나 배려?하시는 목회자님 덕분?에 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우리 집은 잠실이였고 교회는 도봉동이였다. 그래서 내가 너무 멀리서 토요일날 나와야 하는 것과 더 크게는 고등부 부장님이 나는 고등부에 꼭? 필요한 교사라고 목회자님께 강력히? 말했던 터라...내가 이 두가지를 다 하는 건 무리겠다 싶어서 고등부에 날 양보?하고 배려하고자 대학부 간사는 없던 것으로 해도 된다는 통보?를 내게 직접 주셨었다. 근데... 오해는 오해를 낳는다고... 당시 나는 외부에서 대학부 간사를 하려고 어떤 교수님을 모셔오게 되어서 그래서 나는 못하게 된 것이라는 소릴 나한테 처음 제의를 하셨던 그 집사님으로부터 들었었다. 나... 참...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부 간사는 청년부 이경#언니가 맡게 되었고 진짜로 날 배려할려고 그런 결정을 하셨던 것이 맞긴 맞았었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내 신앙이 통채로 흔들려 버렸다는 것이였다. 물론 내가 그 일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보단... 내가 그동안 매일매일의 큐티를 통해 하나님께 들었던 말씀이 다 내 착각이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냐는 거였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난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것도 다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하나님은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를 위로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다. 매일매일의 말씀을 통해...
그리고 어느 누구 하나 하나님이 너한테는 뭐라고 응답해 주셨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과 그것이 가장 중요함에도 목회자님이 나한테 그건 물어보시지 않고 그저 진심어린 배려?만 하셨다는 것이 내겐 진짜 큰 낙망이고 낙심이였다.

앞으론 큐티는 안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고 아이들한테도 난 이제 큐티는 안할꺼라고 마지막?으로 말하러 들어가서 큐티를 한 날도...(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냥 난 안해 그렇게 말해도 되는데 왜 굳이 큐티를 하면서 그 말을 하려고 했지??)
그날 하나님은 갑자기 바뀐 본문으로 니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하나님만 바라라 말씀해 주셨고 계속적으로 내 마음에 사람은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실수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셨고...게다가 신년예배를 통해 제사장은 성도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을 나 들으라고 해 주셨었다.(지금도 생각컨데... 이 말씀은 본문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말씀이였는데... 정말 그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니었는데 그야말로 생뚱맞게 이 말씀을 하시고는 본문설교를 하셨었다. 물론 이 설교하셨던 목회자님은 당회장님이시라... 나의 이런 사정은 전혀 알 길이 없으시고...난 지금도 확신컨데... 이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셨던 위로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가 매일 큐티를 통해 들었던 말씀이 착각이 아니라고 분명히 그것도 너무나 확실하게 알려주셨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후... 나는 교회로부터 또 같은 제의를 받게 되었고... 그땐...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하나님이 하라고 하셔도 안할 생각이라고 말씀드렸지만... 해가 지나고 그 자리를 비록 한 주이지만 공석상태로 두시면서까지 이제는 하나님이 나한테 뭐라 말씀하시는지 그 말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며... 그것을 잘 들어 보신 후 내가 내린 그 결정에 무조건 따라주시겠다는 그런 배려를 받게 되면서 1년 전 상처를 깨끗이 치료받게 하셨고 그런 후 난 하나님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는 말씀을 강력?히 주셔서... 여전히 집이 교회랑 아주 멈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고등부 교사까지 하면서 대학부 간사직을 장염?이 걸리도록... 최전도사님 말씀에 때론 풀타임 전도사님보다 더 열성?적으로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물론 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이다.  

난 그래서??... 매일 주시는 큐티말씀이 나한테 주시는 말씀 맞나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예수님도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역사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

난 그걸 믿고, 알고, 인정하기에 날마다 오늘은 내게 또 뭐라고 말씀하시나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최근 난 내 무식함을 절감한다. 난....요즘 말씀을 보면서... 그 말씀의 배경.... 역사적 배경... 여하튼 사전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
근데...... 난 ㄱㅇㄹㄴ.....휴~


(이건 어디까지나 내 소견이지만... 그래서 맞다고 확신?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적?인 큐티란... 이지영 큐티속엔 이지영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이지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난 영숙이 큐티를 좋아한다. 영숙이 큐티안에는 영숙이가 꼭 들어있다. 그것도 말씀으로 인해 심하게? 고뇌하는 영숙이가... 그리고 그 말씀에 궁시렁대지만 그래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영숙이가 있어서 난 영숙이 큐티속에서 그 영숙이를 만날 수 있다. 난 그게 참 좋다.) (참고 : 영숙이만 예로 들었다고 영숙이만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냥 예다. 예...
그리고 난 말씀으로 삶을 나눈 관계는 쉽게 연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주 연락하지 않고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