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다섯

인생을 한 절반 산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도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이제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은 꼭 내가 간절히 원하는 기도대로만 일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하는 그 기도의 분량만큼 그 무언가를 이루워주시는 분도 아니시고...


이건 참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일이고,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조건이 내 인생을 남들보다 더 형통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을 싫지만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난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참 힘들게 내 젊은 날을 원망과 불평으로 보냈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믿음이라는 이름을 내 스스로 명명하면서 자기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지영아, 의심하지 마. 믿어야 해. 이루워 주실꺼야. 하나님이 누구니?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잖아. 믿자~ 믿자~ 그 하나님을 믿자고...'  하면서 소망?하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그리고 마침내 그 결과가 내가 바라던 것들과는 많이 다른, 아니 내가 원하지 않던 딱 그 상황들을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위기?였던 거 같다.


그동안은 내 한결?같다면 한결?같은 반응은

하나님께 불평하고 실망하고 때론 절망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때론 의심하고...



근데...

이제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이럴 때에도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의연함을 가진 모습...

아니 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건강하고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화 되는 성장의 과정이고

이런 과정이라는 성장통을 통해서 내가 자라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요즘은 내 몸의 손목, 발목의 이러저러한 소소한 반응들을 통해서 내 몸이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를 느끼는만큼이나 나의 또 다른 하나님 안에서의 자라남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4:16-18)

 

 

바로 이 말씀이 이렇게 있었군.

이렇게 이미 말씀해 주셨건만...

그리고 이 말씀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 같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내 인생의 후반부를 좀 더 잘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