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4:32-33 믿는 사람들이 하나로-한마음 한뜻으로-연합했다! 그들은 자기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건 내 것이니, 당신이 가질 수 없소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공유했다. 사도들은 주 예수의 부활을 강력하게 증거했고, 그들 모두에게 은혜가 머물렀다.
34-35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밭이나 집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와 헌금했다. 사도들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그 돈을 나누어 주었다.
36-37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으로, 사도들이 바나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라고 부르던 요셉도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에게 헌금했다.
5:1-2 그러나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 삽비라와 공모하여 땅을 판돈의 일부를 몰래 자기 몫으로 챙겨 두고는, 나머지를 사도들에게 가져와 헌금했다.
3-4 베드로가 말했다. 아나니아야, 네가 어찌하여 사탄에게 넘어가 성령께 거짓말하고 땅값의 일부를 몰래 떼어 두었느냐?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네 것이었고 판 뒤에도 네 것이어서, 그 돈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속임수를 썼느냐? 너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다.
5-6 아나니아가 그 말을 듣고는 쓰러져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젊은 사람들이 곧바로 그 시체를 싸서, 메고 나가서 묻었다.
7-8 세 시간이 못 되어서, 그의 아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채 들어왔다. 베드로가 말했다. 너희가 땅을 팔고 받은 돈이 이것이냐? 예, 그 돈입니다.삽비라가 말했다.
9-10 베드로가 대답했다. 너희가 공모하여 주님의 영을 대적하다니 이 무슨 일이냐? 네 남편을 묻고 온 사람들이 집 앞에 있으니, 다음은 네 차례다.그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삽비라도 쓰러져 죽었다. 젊은 사람들이 돌아와 보니 그 여자의 시체가 있었다. 그들은 시신을 메고 나가서 남편 곁에 묻었다.
11 이즈음에 이 일을 들은 온 교회는 물론 모든 사람들 안에 하나님께 대한 깊은 경외심이 생겼다. 하나님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12-16 사도들이 하는 일을 통해,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표적이 크게 나타나고 놀라운 일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솔로몬의 이름을 붙인 성전 회랑에 정기적으로 모였다. 백성이 그들을 크게 칭찬했으나, 그들 모임에 합류하기를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도처에서 더 늘어났다. 심지어 그들은 병자들을 메고서 길거리로 나와 들것과 이부자리에 눕혀 놓고는, 지나가는 베드로의 그림자에라도 닿기를 바랐다. 예루살렘 인근의 여러 마을에서 사람들이 아픈 사람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몰려나왔다. 그들 모두가 나았다.


어제 퇴근하면서... 읽은 책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름이 잠깐 언급되었다. 언급되었지만... 사실 기억은 안난다. 왜 나왔는지...쩝.
근데 어제 확실히 든 느낌은... 나는 여전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잘 모른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다시 찾아서 읽어본다.

그동안 놓치고 있던 말씀이 상당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이 이해가 안갔나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베드로가 말하길... 아나니아야...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네 것이었고 판 뒤에도 네 것이어서, 그 돈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는 사실 그 돈을 한 푼도 안내도 상관없다는 소리다. 헉~ 

나는 그동안 베드로가... 그  땅 판 돈이 다 하나님의 것일진데... 어찌 니가 하나님의 돈을 훔쳐서? 일부를 꿍쳐놨느냐인 줄 알았었다.쩝...


여하튼.. 사탄에게 넘어가지 말고 살아야겠다. 이게 키포인트였군.(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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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정리하는 김에... 어제 읽은 책 내용을 발췌하자면..
율법주의는 본질상 위선을 부추긴다. 내면의 진상을 은폐할 수 있는 행동 목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신학대학이나 기독교캠프, 심지어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영적'으로 보이는 법을 터득한다. 외면을 강조하면 그만큼 꾸미기가 쉽다. 그것은 내면의 문제를 억압하거나 숨기면서 겉으로만 따라가는 것이다.
신약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자 즉벌이 임한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는 사도행전 5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기사다. 이 부부는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 그들은 소유를 팔아 그 돈의 상당량을 교회에 바쳤다. 다만 한 가지 잘못한 게 있었다. 더 영적으로 보이고 싶어 땅값을 전부 바치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신앙을 거짓으로 꾸민 셈이다. 아니니아와 삽비라에 대한 무서운 처치는 하나님이 위선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지 잘 보여 준다.
내 생각에 위선의 해결방안은 완벽 아니면 정직 두 가지뿐이다. 그러나 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완벽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안은 회개에 이르는 정직이다. 성경이 말하든 하나님의 은혜는 살인, 외도, 배반 등 어떤 죄든 다 덮을 수 있다. 정의상 은혜란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선은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가면이 떨어지면 위선이 은혜를 기피하기 위한 정교한 책략이었음이 밝혀진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발췌(필립얀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