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여, 제가 주께 불평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래도 정의의 문제에 대하여 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악한 사람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어 나갑니까? 어찌하여 속이며 배반하는 사람이 그렇게 편안하게 삽니까?
2. 주께서 악한 사람들을 이 곳에 심으셨기 때문에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주님을 가까이 모신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3. 여호와여, 주님은 저를 아십니다. 저를 보시고 제 마음을 시험하시어 제 마음이 주께 있음을 아십니다. 잡을 양을 끌어 가듯이 악한 사람들을 끌어가십시오. 죽일 날을 정하시고 그들을 따로 떼어 놓으십시오.
4. 이 땅이 언제까지 신음하고 있어야 합니까? 온 들판의 풀이 언제까지 메말라 있어야 합니까?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이 죽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내려다보시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5. "네가 사람들과 더불어 달릴 때 지친다면 어떻게 말들과 경주할 수 있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서 걸려 넘어졌다면 요단 강가의 짙은 덤불 속에서는 어떻게 되겠느냐?
6. 심지어는 네 형제들과 네 친척까지도 너를 속이고 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하더라도 너는 그들을 믿지 마라.


위의 질문은 성경말씀속에 자주? 접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나도 자주? 했고 해오고 있는 질문이다.
오늘 예레미야도 이 질문을 하나님께 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먼저 밝히길? 제가 주께 불평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래도...
여하튼 그래도 어찌하여... 이러저러하냐고 질문을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은.... 늘 그렇듯이 동문서답?같은 말씀을 하신다. 아니지 우문현답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듯 싶긴 하군.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답변은 5, 6절이다. 우문?현답의 그 현답을 오늘은 잘 묵상해 봐야겠다. 이 말씀을 굳이 위 질문 후에 하신 의미를...
사실 5, 6절만 떼어놓고 보면.. 이 말씀이 어렵고 이해 안되는 말씀이 아닌데... 예레미야의 위 질문에 답변?으로 주신 말씀으로 볼 땐... 그 적절함?은 내 사고 밖이다. 

생각나는 말씀이 있어서 몇 개 찾아본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개역개정 엡6: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개역개정 요21:22)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개역개정 마6:33)

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 것으로 보아... 위와 같은 맥락의 말씀인 듯 싶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레미야에게 뿐 아니라 다윗에게도 욥에게도 그리고 수많은 성경속의 인물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류의 질문들 앞에서 늘 이런 식?의 대답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이런 류의 대답을 주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이 "그래도"이 있지 않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저 오늘 예레미야의 고백 중 "여호와여, 제가 주께 불평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백은 그러므로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문제들 그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내가 할 말은 그래도나 그러나가 아닌... 그러므로라는 것을 기억하고 제 삶속에서 이를 더 자주 사용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