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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판관 비유에 대해 한 참 궁금해 했을 때 찾아봤던 내용 중 일부 발췌
믿음은 삶이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삶이다. 지금까지 믿음을 아홉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귀결짓는다면 믿음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단발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삶입니다.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눅18:1-8절 상반절을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여기까지 무슨 말씀입니까?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가 계속 찾아가서 사정하면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한 일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거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정작하시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다음입니다. 그 다음 내용이 무슨 접속사로 시작합니까? 그러나 입니다. 그러나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러나 의 뒤에 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그 앞부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나 뒤에 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8절 상반절까지는 한 번도 믿음이라는 단어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일이 있어서 하나님에게 매달리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합니다. 불교신자도 아쉬운 일이 있으면 우리보다 더 열심히 목탁 치고 기도합니다. 무당을 찾는 사람도 우리보다 더 많이 돈 내고 열심히 굿합니다. 이처럼 아쉬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붙드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것을 참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을 이제까지 배운 것으로 표현해 보면 어떻게 됩니까? '네가 원치 않는 상황 속에 빠져도, 네 계획이 어그러져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갖겠느냐? 하나님을 향해 네 시선을 고정시키겠느냐? 그 상황에서도 신실해지겠느냐? 그 상황에서도 네 믿음이 남에게 보이겠느냐? 그 상황에서도 너 자신을 가꾸겠느냐? 그 상황에서도 네가 정말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겠느냐?'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아쉬울 때 내 욕망과 필요만을 위해 주님을 찾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천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이가 꼭 젖 달라고 해야 엄마가 젖을 줍니까? 때가 되면 다 주지 않습니까? 하루 세끼 아이들이 꼭 밥을 달라고 해야 밥을 주는 부모는 참된 부모가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가운데 정말 귀한 것은 하나도 구하지 않고 얻었습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를 매일 아침 기도하고 "믿습니다."해서 얻습니까? 우리가 기도해서 하늘의 태양이 곡물을 여물게 합니까? 우리가 기도해서 이른비나 늦은비가 내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생명과 직결되는 거은 하나도 기도하지 않고 얻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없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없어도 무관한 것들을 위해서 목숨 걸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삶 자체가 신앙이 되도록, 내 믿음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신앙과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중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후회없이 떠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나의 삶 자체가 자식을 위한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이상 이재철 목사님저 회복의 신앙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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