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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내내 영숙이가 올린 "초청"이라는 글에 대한 다른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했었다. 그래서 몇 번을 들어가서 봤고...
근데... 댓글도... 좋아요도 전혀 없다.
왜 아이들은 반응하지 않는걸까??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건가??
하긴... 잘됐지 뭐... 솔직히 우리들도 처음서부터 원해서 하고 싶어요 해서 시작한 일도 아니고... 별별 생각을 다했다.
차라리 영숙이가 언제까지 여기다 댓글써주세요 이렇게 명시해야 좋지 않았을까?? 영숙이는 혹 쪽지를 받았을까??
근데... 퇴근하면서 "같이 걷기"를 읽는데... 헉...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게 됐다.
작은 제목이 "희락의 하나님"인데...
우리는 자칫 신앙에서 감정의 요소를 가볍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온전한 것인지를 증거해 주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성경을 보면 많은 내용이 감정과 관련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중략)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중요한 감정 중 하나가 '희락'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희락을 우리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따라서 그분과의 영적인 연합을 이룬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감정적 반응 역시 희락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나라에 대해 말하기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핵심적으로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강과 희락이며, 이것은 모두 우리의 감정 상태를 말한다.
최근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몽골국제대학교로 오신 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의 이야기이다.
그 분에게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선교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그 부담은 몽골국제대학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욱 커졌다. 그러나 자녀를 대학에 보낼 까지는 보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몽골국제대학교에 지원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네가 선교지로 가도 너를 사랑하고, 네가 선교하러 가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자유케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니 그 분은 오히려 더 편하고 기쁘게 몽골국제대학교에 지원하고자 뜻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강제적인 조종이나 위협 또는 압력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신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 주실 때, 그때 우리는 더욱 그분을 사랑하고 그 분 섬기기를 기뻐하게 된다.
부담감과 의무감만으로 하나님과 같이 걷는 그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실 때 생겨나는 '기쁨 충만한 거룩'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같이 걷는 삶이 가능하다. 이 기쁨 충만한 거룩은 우리의 행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하나님과 같이 걸어갈 수 있다.
그 교수님은 몽골에 와서 보니, 몽골을 향한 더 큰 사랑과 기대감이 싹튼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처음에는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 다음에는 그 믿음의 반응에 대한 결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기쁨과 성령 충만과 은혜와 사랑의 감정이 부어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하나님께서는 돈 없이, 값없이 나아오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신다. 돈 대신 지불할 것이 있다는 말씀인데,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인 포도주와 젖을 마시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다른 내용... 많이 생략...
그렇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문제가 커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 가운데 눌려 있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만나는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상은... 같이 걷기 일부 발췌)
하나님이 내게 "지영아... 나는 니가 이 일을 나랑 같이 해도 좋고... 나랑 같이 안해도 좋단다... 그러니 니가 쓸데없는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가지지 말아라. 니가 초청한게 아니라 내가 초청한 것이란다... 너는 초대한 사람이 아니고 너 역시 초청받은 사람 중 하나란다. 그러니 너는 니가 초청에 응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단다.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꺼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는 그들이 초청에 응해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초청에 응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한단다." 말씀하셨다.
다른 단어가 아닌 "초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초청이 가지는 의미가 미쳐 몰랐던 의미로 새롭게 느껴졌다.
초청.. 사람을 청하여 부름...
청하다...
그야말로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신 것이였다. 그분은 초청받는 사람에게 그 선택권을 주셨던 것이다.
놀랍다. 초청은 그분의 배려가 함께 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분의 배려라는 것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새삼 놀란다.
내 인생은 요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공부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내 인생의 AD와 BC...
근데.. 이것도 생각해 보니깐... 하나님은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고 공부하기까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의견을 존중하시고 기다리셨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공부를 억지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분의 방법이셨다.
요즘 내겐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내가 읽는 이 "같이 걷기"책에서도... 내가 읽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교제에서도... 내가 매일 하는 "큐티"에서도... 영숙이랑 나누는 대화에서도... 하다 못해... 내가 숨쉬는 것들도...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어진 듯 싶다. 근데... 이건 나 때문이 아니다.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주저앉아 있던 나를...아니 걸을생각조차 없던 나를... 그동안 계속 기다리셨다가 내가 발을 때기 시작하니깐 같이 걸어주시는 그분 때문이지...
한결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오늘은 출근하면서 교제를 볼 요량으로 가방에 책을 넣어왔다.
그리고 버스에선 푹 숙면하고... 지하철에서 자리가 없었지만 서서 책을 펼쳤고...
헉!!!
제목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신다." 그 밑에 적혀있는 말... 하나님이 그분의 역사를 계시하시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동참하라는 "초청"이다. (여기 초청이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주도하시지 당신이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헉이다. 헉...
또 한번 헉은...이번 과 내용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이 나왔다. 이 말씀은 지난 주 영숙이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말씀이였던 것 같은데... 영숙.. 자네도 놀랍지 않나??
처음엔 이 글을 보호글로 할까 했는데... 공개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근데... 댓글도... 좋아요도 전혀 없다.
왜 아이들은 반응하지 않는걸까??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건가??
하긴... 잘됐지 뭐... 솔직히 우리들도 처음서부터 원해서 하고 싶어요 해서 시작한 일도 아니고... 별별 생각을 다했다.
차라리 영숙이가 언제까지 여기다 댓글써주세요 이렇게 명시해야 좋지 않았을까?? 영숙이는 혹 쪽지를 받았을까??
근데... 퇴근하면서 "같이 걷기"를 읽는데... 헉...
내 모든 생각을 내려놓게 됐다.
작은 제목이 "희락의 하나님"인데...
우리는 자칫 신앙에서 감정의 요소를 가볍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온전한 것인지를 증거해 주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성경을 보면 많은 내용이 감정과 관련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중략)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중요한 감정 중 하나가 '희락'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희락을 우리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따라서 그분과의 영적인 연합을 이룬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감정적 반응 역시 희락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나라에 대해 말하기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핵심적으로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강과 희락이며, 이것은 모두 우리의 감정 상태를 말한다.
최근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몽골국제대학교로 오신 교수님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의 이야기이다.
그 분에게는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선교에 대한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그 부담은 몽골국제대학교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욱 커졌다. 그러나 자녀를 대학에 보낼 까지는 보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몽골국제대학교에 지원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마음에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네가 선교지로 가도 너를 사랑하고, 네가 선교하러 가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자유케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니 그 분은 오히려 더 편하고 기쁘게 몽골국제대학교에 지원하고자 뜻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강제적인 조종이나 위협 또는 압력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신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들여 주실 때, 그때 우리는 더욱 그분을 사랑하고 그 분 섬기기를 기뻐하게 된다.
부담감과 의무감만으로 하나님과 같이 걷는 그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실 때 생겨나는 '기쁨 충만한 거룩'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같이 걷는 삶이 가능하다. 이 기쁨 충만한 거룩은 우리의 행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하나님과 같이 걸어갈 수 있다.
그 교수님은 몽골에 와서 보니, 몽골을 향한 더 큰 사랑과 기대감이 싹튼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처음에는 그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 다음에는 그 믿음의 반응에 대한 결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기쁨과 성령 충만과 은혜와 사랑의 감정이 부어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하나님께서는 돈 없이, 값없이 나아오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하신다. 돈 대신 지불할 것이 있다는 말씀인데,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인 포도주와 젖을 마시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다른 내용... 많이 생략...
그렇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문제가 커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 가운데 눌려 있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만나는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상은... 같이 걷기 일부 발췌)
하나님이 내게 "지영아... 나는 니가 이 일을 나랑 같이 해도 좋고... 나랑 같이 안해도 좋단다... 그러니 니가 쓸데없는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가지지 말아라. 니가 초청한게 아니라 내가 초청한 것이란다... 너는 초대한 사람이 아니고 너 역시 초청받은 사람 중 하나란다. 그러니 너는 니가 초청에 응할지 말지만 결정하면 된단다. 나머지는 그들이 알아서 할꺼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는 그들이 초청에 응해도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초청에 응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한단다." 말씀하셨다.
다른 단어가 아닌 "초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초청이 가지는 의미가 미쳐 몰랐던 의미로 새롭게 느껴졌다.
초청.. 사람을 청하여 부름...
청하다...
그야말로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신 것이였다. 그분은 초청받는 사람에게 그 선택권을 주셨던 것이다.
놀랍다. 초청은 그분의 배려가 함께 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분의 배려라는 것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새삼 놀란다.
내 인생은 요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공부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내 인생의 AD와 BC...
근데.. 이것도 생각해 보니깐... 하나님은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고 공부하기까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내 의견을 존중하시고 기다리셨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공부를 억지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분의 방법이셨다.
요즘 내겐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내가 읽는 이 "같이 걷기"책에서도... 내가 읽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교제에서도... 내가 매일 하는 "큐티"에서도... 영숙이랑 나누는 대화에서도... 하다 못해... 내가 숨쉬는 것들도...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어진 듯 싶다. 근데... 이건 나 때문이 아니다.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주저앉아 있던 나를...아니 걸을생각조차 없던 나를... 그동안 계속 기다리셨다가 내가 발을 때기 시작하니깐 같이 걸어주시는 그분 때문이지...
한결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오늘은 출근하면서 교제를 볼 요량으로 가방에 책을 넣어왔다.
그리고 버스에선 푹 숙면하고... 지하철에서 자리가 없었지만 서서 책을 펼쳤고...
헉!!!
제목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신다." 그 밑에 적혀있는 말... 하나님이 그분의 역사를 계시하시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동참하라는 "초청"이다. (여기 초청이 나온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주도하시지 당신이 주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헉이다. 헉...
또 한번 헉은...이번 과 내용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이 나왔다. 이 말씀은 지난 주 영숙이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말씀이였던 것 같은데... 영숙.. 자네도 놀랍지 않나??
처음엔 이 글을 보호글로 할까 했는데... 공개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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