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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먹고 다 배불렀더라

.. 번호:1334 글쓴이:yesteem 조회:8 날짜:2002/04/11 10:08 ..


..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눅 9:12-17)


오늘도 고민?을 했다.
큐티를 긁어다가? 게시를 내가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왜 이걸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여간 난 고민?을 하게 된다.
어쩜 예전엔 너무나 열심히 올라오는 큐티때문에서라도 리플을 열심히? 달았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그러면서 내가 요즘 큐티를 굳이 갖다가 올리는 이유가...
투철한 사명감도 대단한 헌신때문도 아니고... 매일 큐티를 안하면 입안에 진짜? 가시?가 돗쳐서도 아니고... 아이들이 기다릴까봐도 아니라는 거다.

근데 왜 오늘따라 이 말씀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건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나님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니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시면... 난 하나님께 뭐라 말씀드리게 될까요?
이방에 와서 말씀을 먹는? 아이들이 배부르게 먹고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계속 내가 올리고 리플 달고 해야 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불러요~^^

.. 번호:1337 글쓴이:꾸미 조회:1 날짜:2002/04/11 22:03 ..

.. Q.T라는 말을 들었을때...
이른 아침 맞는 아침이슬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며 삶에 적용한다는거..
정말 힘든일 같습니다..
우리가 항상 동일하게 우리의 맘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도 참 힘든일인 거 같지만..

Q.T가 그런우리만을 변함없이 갖게 하는 역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큐티를 시작한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책으로 하고 있는데...
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혹시나 너무 이기적인 결론들로만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의 큐티를 봅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느낌니다..
내가 느끼는 주님과 선생님이 느끼는 주님..
언제나 신실하시고 동일하십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것들...좋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셔서..
또 큐티를 통해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주셔서..
먼저는 하나님께...
그리고 간접적이지만 인도자되어주시는 선생님께..

Re:부활의 첫 열매, 예수
.. 번호:1307 글쓴이:yesteem 조회:2 날짜:2002/03/31 21:43 ..

..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0-23)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
다음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우리들...

오늘 부활주일을 보내면서... 부활... 그 가치를 난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그래도 그날이 되면... 부활... 그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되겠고 넘치는 감사를 돌려드릴 수 있겠지?

하나님
전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가치를 아직은 너무 어설프게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은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기뻐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된 것 같습니다. 내년엔 그리고 해를 거듭할수록 부활절에 드리는 감사의 양이나 폭이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난 그동안 십일조를 드리면서 항상 습관적?으로 감사헌금을 같이 했었다. 사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감사헌금을 한 적은 거의 없었고 그냥 항상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봉투 2개를 준비해왔었다.
근데 오늘 아침 교회가기 전에 십일조와 감사헌금 봉투를 챙기면서 오늘은 부활주일이라서 부활주일 감사헌금까지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 봉투를 3개씩이나?? 게다가 주일헌금까지??
3갠 너무 많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고... 감사헌금 봉투를 다시 서랍장에 집어 넣으면서 그냥 부활절 감사헌금에 합쳐서 하는 거 더 낫겠지? 하면서 헌금을 준비했다.
근데 막상 예배시간에 헌금을 드릴 시간이 되면서... 마음이 깽기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내 속마음을 빤히 아셨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사실 난 아침에 봉투의 갯수만 줄인 것이 아니라 금액까지도 줄여서 헌금을 준비해 왔었다.
하나님은 내가 헌금을 얼마를 하느냐보다는 내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하느냐를 중요하게 보시는 분인데... 감사의 마음은 커녕...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가지고 머리를 굴리다니...

그동안 난 어쩜 헌금이 그야말로 바구니에 넣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고 습관에 젖어 헌금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2. 올해 들어서 거의 처음??(물론 지난 주에도 달랑 빨간 다라 1갤 설거지 했지만)으로 오랫동안 선교코너에서 봉사를 했다.
모든 후배들의 유독? 나한테만 보이는 한결?같은 반응
"언니... 너무 수고하셨어요..." "지영언니가 오늘 너무 많이 수고하시네요"

근데 난 눈치로 오늘 알게 됐다.
항상 와서 봉사하는 사람들끼리는 절대?? 오고 가지 않는 말이
바로 이 말이라는 것을......
"너 정말 너무 수고한다"

Re:Re:부활의 첫 열매, 예수
.. 번호:1309 글쓴이: 성수도사 조회:13 날짜:2002/04/01 14:21 ..

.. 샬롬~~ 매일 선생님이 올려 주시는 큐티를 묵상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하..
오늘 글을 읽으니 왠지 웃음이 나면서도(실례라면.. 죄송합니다..)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예물을 기쁘시게 받으시는데도
저 또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자동적으로 두개씩 준비 했던것
같네요.. 그것도 보란듯이??이름을 꼬박꼬박 써가면서..
생각해 보니깐 저도 어제 선생님께
"수고가 많으시네요^^..." 라고 인사 했던것 같은데....
정말 그런것 같습니다.
매일 같이 수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가
" 참 수고가 많다."는 격려를 잘 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일까요..
아님 나도 너 못지않게 수고하니깐..이런 생각때문일까요..
가장 흔하기에 중요성을 못 느꼈던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얼마전 황사 주의보가 떨어졌을때 느꼈듯이
우리는 서로가 항상 곁에 있기에 그 소중함을 잘 못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크리스챤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퇴보요 자연 도퇴를 의미하니까요..
" 아주 조금씩.. 그러나 앞으로..."
그런 모습으로 4월 한달을 살아드리는
우리가 되었음 좋겠네요..

Re:쉬운 정죄! 어려운 용서!
.. 번호:1289 글쓴이:yesteem 조회:4 날짜:2002/03/24 21:35 ..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난 중학교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시온교회 학생회는 중등부때 잠깐 나오긴 했지만 부적응아로 도태??되었다가 다시 제대로는 고2때부터 잘 나오기 시작했는데... 난 당시 상당히 조용하고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잘 듣는 학생이였다. 내가 너무 조용하게 지내서... 사람들은 내가 아마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그다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였다.
근데... 고2때... 사고를 한번 쳤다. 롤링페이퍼를 한번 한적이 있었는데... 당시 난 선후배할 것 없이 모든 아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점만 꼬집어서 비판하듯 글을 썼었고... 이것을 본 모든 아이들은 나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나를 모르던 선후배들이 날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 그 일은 내가 교회생활을 하는 몇년을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큰 걸림돌?이 되었었다.

비판을 아주 잘하고... 남을 잘 정죄하던 내가... 지금은...^^
비판을 안하고 남을 헐뜯는 것을 않한다고까진 못하겠지만...
난 참 많이 변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바로 그분께 있기에... 난 변할 수 밖에 없던 것 같다.

하나님
그때와 비교한다면... 난 참 많이 바꿨지요? 감사합니다.
점점더 예수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딴소리)
오늘 예배를 드리는 중에 갑자기 내 주보가 없어졌다.
분명 내가 주보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없어진 거다.
그래서 혹시 바닥에 떨어졌나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대도 보이지가 않는다.
추측컨대... 분명 내 옆에 계신 분이 내 주보를 가지고 가신 것 같은데... 그분이 자신이 받아가지고 온 주보라고 착각을 하시고 자기 주보처럼 보고 계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 은근히 기분이 좋치 못했다. 왜 남의 주보를 가져간담.
주보는 지금 볼려고 가지고 오는건데... 그렇다고... 내 주보니깐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광고도 그렇고 말씀도 그렇고... 주보없이...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큐티 본문이 생각이 났다.
남이 내껄 가져가더라도 도로 받을 생각을 말라는 말씀이...
나... 참... 이렇게 이런 상황에서 적용이 되다니...
별 수 없이 내?? 주보를 포기했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게... 주보를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는 나인데...
주보 이상의 훨씬 포기가 안되는 것들을 남이 가져갔을 때
말씀대로 도로 받을 생각을 안하는 삶은 얼마나 어려울까 싶었다.

그러면서... 매일 이곳에서 큐티하는 말씀이 내 삶속에서 적절??히 적용이 되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기대치에 도달하는 적용수준은 못되지만서도^^)

아참... 그리고...
주보는 다 보시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그분이 내 성경책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시더니 나가셨다.^^)

이런??? 진짜 제대로 말씀이 적용이 될려면...
이건 도로 받으면 안되는건데 @-@

근데 솔직히 한켠으론 드는 생각은......
앞으론 주보를 가지고 와서는 방심?하지 말고...
꼭 성경책 밑에 잘 깔아놔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왠지^^) ..


Re:음모자들!
.. 번호:1291 글쓴이:yesteem 조회:0 날짜:2002/03/25 10:04 ..

10 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
13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막 15:6-13)

겉으로 보여지는 이유가... 시기였다니...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됐다.
해마다?? 보내는 그다지 다를 바없는?? 그런 고난주간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갑자기? 생기면서 의문을 하나 품게 됐다.
사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셨기에 이에 동참하고자 우리도 고난주간을 약간의 고간을 자초??(내가 자초?하는 행동을 말하자면 금식 정도?)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내왔었는데... 생각해 보면... 난 그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어설프게 지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토요일날 조별 성경공부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궁금해 하던 누가복음 말씀과 함께 왜 하나님이 특별히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우릴 구원하셨을까 궁금하다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리 조원들에게 물었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언니는 너무 어려워~"라는 반응과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을 말하는 통상적??인 답변을 사람들이 내게 해줬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런... 또 내가 너무 엉뚱한 질문은 한 건 아닌지... 그런 약간의 후회를 해야 했다.

사람들이 내게 해 준 말들 중에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은 거라고...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라는 성경구절을 같이 말해줬는데... 왜 그게 하필 고난이였을까... 궁금하고... 지금도 내내 하나님께 물어보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 내게 첫번째로 든 생각은... 고난이라는 과정이 어쩜 우리가 가장 연약할 수 밖에 없는 때이기에 동시에 가장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때이고...하나님과 나를 가장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기는 때이기에 굳이 고난이라는 과정을 겪으신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도 그 고난을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직까지 이런 생각들이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특히나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왜 그가 하필이면 고난을 받았는지... 계속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나로 알게 하시는 하늘의 지혜를 발견하게 되길 소원하게 된다.

하나님
내가 너무나 당연히 생각해 왔던 것을 지금 하나님께 되묻고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지식적인 앎이 아닌... 그 고난의 진정한 의도와 의미를 깨닫는 한 주간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즘 듣는 기도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파트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의 장애물편에서... 짧은 부분을 함께 나눠보고 싶어서 적어본다.

우리는 기독교 교리에 근거하여 생각할 수는 있지만, 머리와 가슴이 분리된 탓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직관적으로 아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흔한지 보여주는 예가 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머리와 가슴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고 극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것에 너무 감사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를 통해 자신이 맛본 기쁨을 다른 그리스도인과 나누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난 후 그가 보인 반응은 맥빠지는 내용이었다.
"아, 그러니깐 당신은 하나님과 직통으로 대화를 한단 말이군요!"
헌신된 그리스도인인 그는 칸트에 동조하는 상당수의 '믿음이 있는'교회가 갖고 있는 불신앙의 유형을 잘 보여준다.

(중략)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만드셨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안에 거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보고, 듣고 알 수 있는 초자연적인 믿음의 눈과 귀를 주셨다.


내용이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건 아니겠지???? ..


Re:십자가! 십자가!
.. 번호:1293 글쓴이:yesteem 조회:0 날짜:2002/03/26 09:51 ..

.. 20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그가 당하신 것이 고난만이 아니였고 희롱까지 당하셨다는 오늘의 말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과정들 속에 사용?되었던 사람들은 과연...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목도했을때...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을까? 아님... 놀라 자빠??지듯 하며... 어딘가로 숨어버렸을까?

희롱하고 침을 밷는 바로 그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싶은 마음이 바로 예수의 마음이라는 것을... 그들이 그 후에라고 깨달았을까??
어쩜 그들을 만나셧던 이 과정도 결과적으론 구원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레네 사람이 처음엔 억지로 십자기를 대신졌었지만... 나중에 예수님이 진짜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는 얼마나 감사했었을까?

하나님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어쩜 난 고난에만 촛점을 맞추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고난 뒤에 부활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면... 그 고난을 한결 침울함이 아닌... 감사함과 감격함으로 느꼈을텐데도요. 하나님 남은 고난 주간엔 훨씬 감사하는 마음이 내게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칼빈 밀러1112 Q.T/2000~2003 2008. 5. 21. 11:05
칼빈 밀러는 그의 저서 「해방된 영혼」에서 자신의 시기심과 자존심 때문에 괴로워했던 경험을 적고 있습니다. 그가 목회를 하고 있을 때 한번은 자기 교회의 다른 성도와 거의 같은 시기에 집을 팔려고 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의 집은 사흘만에 팔리고 자신의 집을 파는 데는 일 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교인에게 어떻게 집이 그렇게 빨리 팔리게 되었느냐고 물어올 때마다 교인은 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집을 그저 하나님 손에 맡겼지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팔아주시더라구요.”

자기 교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밀러는 “하나님, 제게 대해 무슨 감정이라도 있으십니까?”라고 하나님께 물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교인이 사흘 만에 이루어진 매매에 대해 자랑하는 것에 대하여 밀러는 그때 자신의 입장을 방어적 자세로 취하였음을 솔직히 고백하였습니다. 밀러는 그 교인의 하나님에 대한 얕은 신앙과 자신의 독실한 믿음을 비교하면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적어도 밀러는 자신의 집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성경공부를 인도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였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한 것과 같은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책임은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삶에 내리시는 축복에 대해서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시기가 우리 속에 생길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요한의 장래에 대해 알고 싶어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21-22)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베드로의 경험을 통해 우리도 깨닫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에 대한 계획 그리고 나에 대한 계획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노력하고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그분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당신 주위의 것들에게 당신의 시선을 맞추면 주님을 ”樗?따라가기가 힘들어진다.


지난 주부터 사무엘상을 읽기 시작했다.
작년인가 읽었을때에도 한나가 기도를 마친 후 보였던 행동(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음)들을 보면서 놀랐었는데...
요번에 읽으면서는 그동안 내가 한나의 기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는 기도했기 때문에 아들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겉으로 보기엔 아들 없음으로 인해 마음이 고통스럽고 아팠다고 표현되어 있고 그래서 간절히 아들을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보여지지만...
한나 아들이 누구인가? 바로 사무엘 아닌가?
하나님께서 생각에도 없던 사람을 무계획적으로 사용하시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일부러?? 한나의 고통을 보고 계시면서도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셨었다.(1:5,6)

바로 이 시간들이 하나님의 세심함이 드러나는... 한나에게 주신 배려의 시간들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하나님께서 듣고 싶어하는 말을 듣기 위해 친히 기다리시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한나는 여호와 앞에 그 마음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었고...
마음이 괴로운 덕분??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서원하여 아들을 기꺼이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만약 한나가 바로 잉태했었다면 한나가 아들을 기쁨 마음으로 하나님께 다시 드릴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 한나가 간절한 마음만을 아뢰고 기도만 열심히 하고... 아들을 드리겠다는 서원(일종의 포기가 아닐까?)은 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아들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시간을 주시면서 준비하게 하신 것 같다.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실 자를 기쁜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는 그런 준비 말이다.
한나는 그 더딤이라는 시간속에서 그 아들이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참 이상하게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얻는다거나... 아님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될때는...
그 받은 바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그 결과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또한 감사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
허나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안되고 안되는 일들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비로소 듣고 싶어 하시는 그 말들을 아뢴 후에 받는 결과들에 대해서는 비로소 꽉찬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내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세심함이 담긴 그런 배려의 시간들-하나님의 의도 되어진 시간-을 나는 과연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행동하면서 보내고 있는가 되돌아 보게 된다.


다시금 이렇게 긴 글을 올리게 되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걸까???



요한복음 [John] 18장 36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오늘 중고등부 카페에서 큐티한 내용이다.

나 스스로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난 여전히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길 요구있다는 것이다.

내 불평의 대부분 내용은 왜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왜 속하지 않느냐 것임을 알게 됐다.


왜 날 위해 싸우시지 않느냐는 둥...
왜 가만히 계시느냐는 둥...
왜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들어내지 않느냐는 둥...


그가 속한 나라이며 내가 속할 그 나라를 소망해야 겠다.

이 말씀으로 인해 삶이 좀더 기뻐지려나?


내가 그 비유를 읽을 때마다 포도원 주인이 불과 한 시간만을 일한 일꾼들에게도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일꾼들과 똑같은 품삯을 주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저항감이 내 속에서 끊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어째서 그 주인은 여러시간 일한 사람들에게 먼저 품삯을 주고 나서 늦게 들어온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오히려 11시나 되서 늦게 들어온 일꾼들에게 먼저 품삯을 지불함으로써 앞서 들어온 사람들에게 그릇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불필요한 번민과 질투를 유발시키는 것일까? 이런 질문은 하나님의 독특한 질서를 현세적인 질서에 입각해서 보려고 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 포도원 주인은 일찍 온 일꾼들도 늦게 온 일꾼들에 대한 자신의 관용을 같이 기뻐해 주기를 바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전에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포도원에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나아가 그 주인이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면서 더욱 감사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 주인이 그렇게 행동했을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내 머리로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와 같은 비교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려면 마음이 180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고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약간만 일한 사람도 많이 일한 사람만큼 사랑을 받는 행복한 가정의 자녀들로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에서 짧은 시간이든 오랜 시간이든 거기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관심을 받게 될 때 제일 기쁘게 여기실 정도로 너무나 순전하시다. 실제로 그분은 너무나 순박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행복해 하기를 기대하신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분은 오해에 빠진 애인이 당황스러워하는 것을 보시고 "내가 너그러운 것 때문에 왜 당신이 질투를 하느냐?"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당신이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었고, 또 나는 당신이 요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었소! 그런데 왜 당신은 그렇게 분하게 생각하오?"라고 물으셨을 것이다.

[Heinrich Spacemann의 연구 논문 중에서...]


내 글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잠시의 침묵을 통해 다시 꿋꿋히 쓰렵니다.^^
아래 말씀은 요번주에 읽고서 정말 위로함과 힘을 얻은 말씀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어서...


신명기 20장

새롭게 임원이 되어질 자를 생각하며 올립니다. 그들은 능히 싸우려 나갈 자들입니다.

1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3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4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

5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

8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

9백성에게 이르기를 필한 후에 군대의 장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너는 집으로 돌아가라.. 말하는 그 대상에 내가 속해있는지...

우리는 싸우는 군사입니다.
그러니... 싸우러 나가는 자가 되어야 겠지요?^^


신명기 5장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6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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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번 주 성경을 읽으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말씀이다.
위 본문은 십계명이 나오는 부분이다.
근데, 나로선 너무나 새롭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실 때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
산 위 불 가운데서 그들과 대면하여 말씀하셨기에
그들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
그래서,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세 혼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는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여기에 이런 말씀이 있는줄도 여태 모르고 있었다.
여태껏 내 사고는 원래 모세를 좋아하시니깐 모세하고만
이야기 하시는 줄 알았었다.(이런 무지함...)

이 말씀을 읽고난 후 나의 머리속에서 계속 걸리적거리는(?) 부분은 바로....
두려워하여 ~ 못하므로 라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가 보이시는 것을 많은 부분에 있어 제대로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못하기에
내 삶에 있어선 적어도 그는 한정적인 일만을 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수용이란 표현보단 감당이란 표현이 더 맞나?)

여태껏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모양으로만
내가 믿을 수 있는 정도로만
내게 능력을 베푸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분이신데 말이다.


불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때에야 비로소 하나님 그분을 대면할 수 있듯이
내 사고나 내 삶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 그를 한정시키지 않을때에야
비로소 그가 더 하시고 싶으신 일들을 내게 행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번주 주일예배 말씀 중에 가장 고마왔던 말씀은 요일 3:14이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래도, 많이 감사하는 건...
나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내 안에 거하시는 줄을 내가 안다는 사실.


p.s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난 불이 두려워 산에 오르지 못하는 부류속에 속했을 것 같다.


오늘 오전 불현듯 생각난 말씀이다.
정확히 다시 읽어보고 싶어 자료실에 들어가 구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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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9:21~23

21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머물러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아침이 되어 구름이 걷혀 올라가면,
그들은 길을 떠났다.
낮이든지 밤이든지, 구름만 걷혀 올라가면,
그들은 길을 떠났다.

22 때로는 이틀이나 한 달이나 또는 몇 달씩 계속하여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으면,
이스라엘 자손은 그 곳에 진을 친 채 길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구름이 걷혀 올라가야만 길을 떠났다.

23 이렇게 그들은 주의 지시에 따라 진을 쳤고,
주의 지시에 따라 길을 떠났다.
그들은, 주께서 모세를 시켜 분부하신 대로, 주의 명령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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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금 늦어짐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그 불안함은 영낙없이 불만이나 불평, 두려움으로 이어질려고 하고...

근데, 오늘..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구름기둥이 생각이 났다.
구름이 움직여야만 움직이는 이스라엘의 행보...
구름이 이틀이나 한달.. 그 이상을 머물러 있을 때에는 움직이지 않는 그들의 행보...

구름이 머물러 있는 시간들이 계속 연장되어질 때 그들의 행동
-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기다림...

구름만 걷혀 올라가면, 낮이든지 밤이든지 길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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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 속에서 새롭게 발견한 감사함이 있다면...

바로 지금 난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름이 머물러 있는데 혼자 성급히 길을 떠나버리지 아니하고 있음에
구름이 언제든 걷혀 올라가면 바로 길을 떠날 준비자세를 갖추어 가고 있음에


앞으로의 나의 기다림이 시간 자체를 흘러보내는 그런 기다림이 아닌 그의 지시에 따른 適時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 되길 소망하게 되었다.


구름기둥 (2000-09-23) 이하연(godbl@hosanna.net)

항상 하나님 말씀앞에 귀를 기울이는 지영이의 모습에서
감사와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지영이가 알려나 모르겠다.
지영이가 구름기둥을 통해서
귀한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나눠주니 기쁘다.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지여이의 모습도 이뿌구 *^^*
지영이의 삶에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영이의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음!!!

사랑한다 좋은 친구야




늘 그랬는데... (2000-09-23) 최종식(ch7647@hosanna.net)

늘 그랬는데 지영이의 글을 읽고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때가 있다. 그 때를 기다려라. 내 자신에게 이야기하면서 나 스스로 조급증에 빠져버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말이다.

오늘 지영이의 글로 새 힘을 얻었다.
남들보다 늦지만 좀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때가 아니니 더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

예, 기다리겠습니다!

제사장 엘르아살이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법률이니라

금, 은, 동, 철과 상납과 납의

무릇 불에 견딜 만한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오히려 정결케 하는 물로 그것을 깨끗케 할 것이며 무릇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너희는 제 칠 일에 옷을 빨아서 깨끗케 한 후에 진에 들어올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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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씀이었는데
어젠 이 말씀을 읽으면서 좀더 중요하게 이 말씀이 다가왔다.

특히, 무릇 불에 견딜 만한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무릇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우리는 무릇 불에 견딜 만한 사람이기에 불을 지나게 하실 것이고 더욱 깨끗하게 될 것이다...

너무 귀한 말씀이라 생각된다.

민27: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위 말씀은 개역개정판임)

지난 주에 발견한 말씀인데 특히나 민수기 27:18절 말씀은 너무나 내겐 신선한 말씀이였다. 신34:9의 말씀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아브라함하면 믿음의 조상, 의인...
모세하면 온유한 자...
다윗하면 내 마음에 합한 자 등등

하나님께서 나름대로 믿음의 조상들에게 각자를 평가하신 말씀들이 있지만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라고 평가하셨다는 말씀은 읽으면서 너무나 새롭게 느껴지는 동시에 이 말씀이 참 기쁘게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 지난 한주간 동안은 이 말씀 때문에 이 말씀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 하연이가 올렸던 유승준 간증테이프에서도 온누리 교회 목사님이신 것으로 추측되는 목사님 말씀 왈 "승준이는 성령의 사람입니다."라는 말씀이 내겐 가장 기억나는 부분이었었다.

이 말씀들이 내게 기쁜 것은 분명 내 안에도 그의 영이 있기 때문이고 나 역시 성령의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

모세의 후계자로 택함 받은 여호수아는 이미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였고 모세의 안수함에 더욱 지혜의 영이 충만해 졌었다... 영이 충만하니 ~ 여호수아에게도 순종...

나를 평가하시는 그분도 내게 이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나의 사랑하는 딸 지영이는 그 안에 지혜의 영이 충만한 자니...


지난 주 민수기를 읽어나가면서 너무나 의문스럽게 다가오는 말씀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20:12)
위 말씀은 므리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라는 표현을 읽으면서 사실 난 적지않게 놀랐다. 내 머리속에 있는 모세는 믿음의 면에서 뛰어난 사람이였는데 왜 하나님은 이들을 이렇게 표현하셨을까하는 의문이였다.
뒤의 내용인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라는 표현도....
그들은 분명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냈었는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것이 있다면...
특정 상황, 특정 시간, 특정 장소속에서 그때마다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시고 그들을 평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위 하나님의 말씀은 므리바라는 그 장소, 그 시간에 대한 평가였다.
그들은 그 장소, 그 시간에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그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평가하심은 그 시간, 그 장소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단연 이스라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많이 나타냈던 사람들이고 여호와를 뛰어나게 믿은 자들이였다.
그러나, 그야말로 짧은 순간 그 장소 그 시간에 불신하므로,,,
순간의 원망하므로 이들이 약속에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론은 호르 산에 죽었고(민20:24 아론은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 까닭이니라), 모세도 모압 땅에서 죽었던 것이다. 모세가 죽을 때 모세는 노쇠해서 죽었던 것이 아니였다.(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7)

만약 이들이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함을 나타냈다면 그들은 약속에 땅에 들어갔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는 의심이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물속에 빠져있다고 가정할 때 "당신은 지금 즉시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 물속에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글새... 선뜻 "예"라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 그 상황에서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믿음이 내겐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게 있어 이런 경우는 너무나 많았던 것 같다. 내 삶의 모든 상황 상황, 시간 시간속에서 난 많이 그를 믿지 못했던 것 같다. 그의 존재에 대한 믿지 못함이 아닌 그 상황 그 시간에 그의 역사하심에 대한 믿지 못함이 많았던 것 같다. 과연 그가 이런 일을 해 주실까? 하는 의심들,,,,

하연이가 대만을 가게 된 것도 재덕이가 대만을 가게 된 것도 그 상황속에서 그 시간, 그 장소 속에서 그가 보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가능했던 것일꺼다... 만약 하연이나 재덕이가 쉽게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그 일 하실 것을 믿지 못했다면 그들은 못갔을꺼다..(타인의 경우로 예를 들어서 미안^^)

그동안 내 믿음이 요구되는 상황 상황속에서...
어떤 상황에선 그를 온전히 신뢰했고...
또 어떤 상황(아마 전자보다 훨씬 많은 부분)에선 그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근심했던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온전히 신뢰했을땐 믿음의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고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였을땐 믿음의 결과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얻지 못하고 노쳤버렸었다.

앞으로 내 삶의 특정 상황, 특정 시간, 특정 장소속에서 온전히 그때에 그를 믿음으로 그가 주시는 믿음의 결과들을 맞보면서 살고픈 기도제목이 새롭게 생겼다.

그리고,,, 그동안 특정 상황, 시간, 장소에서 믿음 없었던 내 삶의 조각 조각들을 회개하게 되었다.


나   IP : 210.181.117.185 날짜 : 2003-12-11 10:45:05    조회 : 1     추천 : 0/0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2000-06-15)

이곳에 글을 올리면서 정말 보여지기 위한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사실 보여진다는 것을 정확히 그만큼만 보여질 수도 있고 그 이상으로 보여질 수도 있고 그 이하로 보여질 수도 있다. 내가 올리는 글들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춰지길 기대하며 글을 올린다.

어제는 히브리서 4번째 강해를 배웠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이라는 말씀이 강하게 와 닿는다. 나는 이제까지 내일에 촛점을 맞추고 내일을 기대하며 내일의 나는 지금보다는 더 멋지고 더 신실하게 하나님을 신뢰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이라는 시점을 그리고 지금 이곳, 현재의 내 모습이라는 시점을 가치있게 감사히 받아드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에 대한 불평이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말씀을 배우면서 우리의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충성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반 아이들과 공과를 하면서 성경읽은 것을 체크할 때마다 아이들은 선생님 다음에는 꼭 읽어올께요... 내일부터 읽을께요 라는 대답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그 다음주가 되면 여전히 아이들은 동일한 답변을 하곤 한다.

나도 여태껏 하나님께 "하나님 내일부터 충성하겠습니다. 내일부터 헌신하겠습니다. 내일부터 잘하겠습니다."라는 말들을 해오면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지내온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오늘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도 우리의 내일에 대한 충성, 내일에 대한 순종함보다는 우리의 오늘에 대한, 지금의 충성, 지금의 순종함을 더 크게 바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내가 되어야 겠다. 그래야 나의 오늘로 인해 생겨나는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는 기대할만한 것이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