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4:46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 주인이 명한 대로 일하고 있는 종은 복되다.
47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악한 종이, 주인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49 다른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면,
50 생각지도 않은 날, 알지 못하는 때에 그 종의 주인이 올 것이다.

주인이 명한 대로 일하고 있는 종은 복되다고 하신다. 그냥 일꾼도 아니고 적어도 종의 신분이라면 주인이 명한 대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그런 종은 착하다? 잘한다?가 아닌 복되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오늘 좀 의외?로 다가오는 건...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라고 하시면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비유로 하신 말씀인데...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그분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니 명한 대로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인건가?
그렇다면 너무 막중한 임무가 우리에게 맡겨진 것 아닌가싶다.
사실 난 그분이 내게 그분의 모든 소유를 맡기고 그 일을 충실히 잘하길 원하시는진 잘 모르고 있었었다. 그저... 내가 맡은 일은... 그냥 뭐... 아주 조금 정도가 아닌가 싶었고 그것조차도 내가 오케이 해서 받아드려야만 내게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몇개도 딱히 구체적이라서 내가 그걸 지금 잘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태이고... 엄밀히 말하면... 하는 일 없이 아...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하면서 말만 하고 있는 입장인데... 
여하튼 오늘 큐티를 통해서는... 윽... 그분이 내게 맡기신 일이 도대체?? 뭔지?? 제대로 알아채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하기사 난 이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군.쩝)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그것이 그분의 소유 전부라면...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이라는 것에... 상당 부담이 가긴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로 죽도록 충성하라라고 하셨는지 이해는 간다. 그런데... 난??  


하나님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종에 제가 해당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맡기신 일을 얼마나 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가요? 무엇보다도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것을 할 수 있는 행동력을 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주인이 명한 대로 일하고 있는 종이 받을 그 복을 받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4:42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라. 왜냐하면 언제 너희 주님께서 오실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만약 도둑이 언제 들어올지 집주인이 안다면 미리 준비를 하고, 도둑이 집에 들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44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를 해야 한다. 인자는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오늘은 여건상... 간단히....
내가 기억해야 할 것...
그러므로 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므로 난 준비를 해야 한다.
깨어있는 것 = 준비일까??

하나님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게 해주시고 준비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4:33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와 문 앞에 있는 줄을 알아라.
34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날 것이다!
35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하신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갑자기 계시록 마지막 말씀이 생각나서 찾아봤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과연 나도 이와 같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환영?할 입장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기엔... 내 주변에 내가?? 해야 할 일??들... 아니 하나님이 좀더 적극적으로 해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일??들이 내겐 아직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하나님 하나님은 반드시 하신 말씀대로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그 때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셔서 택함 받은 백성을 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기쁨으로 주를 맞기 위해 제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택함받을 백성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저로 인해 그들이 구원받는 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제가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할 수 있도록 저를 주관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4:21 그 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생기고 나서 지금까지 이 같은 환난은 일어난 적이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22 하나님께서 그 기간을 줄여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구원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기간을 줄여 주실 것이다.
23 그 때에 사람들이 '여보시오, 그리스도가 여기 계십니다!' 또는 '저기 계십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믿지 마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증거를 내보일 것이고,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선택하신 사람까지 속일 것이다.
25 보아라. 내가 미리 너희에게 일러 주었다.
26 그러므로 사람들이 '여보시오. 그가 광야에 계십니다'라고 말해도 거기에 가지 마라. '여보시오, 그리스도가 골방에 계십니다'라고 말해도 믿지 마라.
27 번개가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쩍이듯이 인자가 오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28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들 것이다."


하나님께선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환난의 시간을 줄여주신다고 말쓸하셨다.
그리고 미리 우리에게 일러주니깐... 그리고 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선택하신 사람까지 속일 것이기 때문에 속이는 자의 말을 믿지 말라고 하신다. 인자는 번개?처럼 오신다고...

이렇게 미리 알려주셨으니깐... 난 이걸 까먹지 않겠지? (???)

하나님 미리 말씀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그 때가 되면 더욱 알게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모든 것의 기한을 정하셨고 그 기한까지만 악한 자들의 행함을 허락하셨습니다. 번지지르한 말과 행동에 현혹되지 않게 하시고 그 기간을 지혜롭게 잘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시고 무엇보다도 저에게 이 말씀을 기억할 수 있는 기억력을 허락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모든 이들도 말씀을 기억하는 기억력이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4:3 ~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5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6 또한 너희는 전쟁에 대한 소식과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라. 이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때는 아니다.
7 민족이 다른 민족과 싸우기 위해 일어나고, 나라가 다른 나라와 싸우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 여러 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8 이런 일들은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다.
9 그 때, 사람들이 너희를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나 때문에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0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질 것이며, 서로를 넘겨 주고, 미워할 거이다.
11 그리고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12 또한 불법이 더욱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14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모든 나라에 증거될 것이다. 그 때서야 세상의 끝이 올 것이다."

참 많이 들었던 말씀이다. 나의 모교회는 다른 어떤 말씀보다도 말세에 대한 말씀을 아주 잘 가르쳐주던 곳이였다. 목사님께선 말세에 대한 설교에 큰 은혜를 받으셨던 분이셨다. 당시엔 아주 상세하게 그것도 아주 자주 이런 특별한 설교를 듣는 것이 참 복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나 우리 교회 사람들에겐 교회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완전 충만했었었다.  
근데 시간이 지나고 지금의 나를 보면 과연 그 때 들었던 그 말씀들을 지금 난 어느 정도 내 말씀으로 가지고 있나를 돌아보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왤까? 당시엔 분명 열심히 듣고 열심히 깨닫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하튼 최근 지진이 여기저기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크게... 사실 지진이 말세의 한 현상이라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말씀에 기초할 땐 아직은 그 때가 아닌 것 같지만... 
여하튼 내가 앞으로도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예수님은 분명 우리에게 앞으로 있을 여러 어려움?들을 미리부터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이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은 이미 말씀해 주신대로만 나타난다는 사실이고...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고 더 중요한 건 끝까지 견디는 것은 성령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에겐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일 꺼다.

하나님 요즘 세계적으로 지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의 일부분인지요? 이런 일들은 해산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셨는데 우리 앞에 놓이게 될 여러 어려움들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현재 지진으로 고통속에 처한 사람들에게도 말입니다. 하나님 세상의 끝이 누구나에게 두려움이 아닌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넉넉히 견디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모두에게 구원의 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3:16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는 화를 받을 것이다. 너희가 정해 놓은 규칙에 "하나님의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성전의 황금을 두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다니
17 이 눈멀고 어리석은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황금이냐? 그렇지 않으면 황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또 너희는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그 제단 위에 있는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다니
19 이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렇지 않으면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다른 번역에는 없는데 현대어성경에는 유독 있는 말이 있어서 오늘은 현대어성경으로 큐티를 한다.
너희가 정해 놓은 규칙이라... 음...
그렇다면.. 나는 위 말씀처럼 어찌보면 하나님의 말씀같으면서도 그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나로 인해 변형된 말씀... 내가 정해 놓은 규칙으로 인해 내가 변형시킨 말씀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잘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근데 그렇다고 생각이 안난다고 과연 없는가 생각해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 어쩜 너무나 많아서 그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쩝.
어쩜 뭐... 꼭 본질을 변형시키기까진 아니더라도 난 내가 정해 놓은 그 규칙과 틀안에서 그 정도에 해당하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내 위주로 짜여진 말씀과 내 위주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 벽에 부딪힌 느낌이로군. 쩝.

눈멈... 내 눈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내가 정해 놓은 규칙이나 틀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근데 생각할수록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주관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3:3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지는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올리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짐을 지기 위해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 큐티를 하면서는 아주 옛날일이 생각난다. 사실 이 기억이라는 것이 그리 유쾌한 기억이 아니라서 좀 그렇지만...
직접적인 우리 샘은 아니였는데 내가 고등부때... 아참 난 참고로 중1땐 친구들이 다니는 교회를 어영부영 다니다가 중2때 엄마교회로 옮겼는데 교회엔 학교친구들이 하나도 없어서 난 부적응아로 전락?해서 자연도태되었고 이후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앎에 대한 욕구 때문에 내가 다시 교회학교를 찾았던 건 고2가 되어서였다. 
여하튼 내 고등부시절 여교사샘들에 대한 기억은 참 부정적이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고등부수련회를 함께 참석했던 파트타임?같은 여교사샘들이 더 정확한 표현일려나? 여하튼 외모는 상당히 예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말이나 행동은 참 쌀쌀맞았었다. 차별도 심했었고... 내 동기 중 자신들이 잘 아는 누구누구의 동생은 당시 여샘숙소로 배정되었던 출입통제 지역?도 자동통과였었고... 난 통제에 걸려 밖에서 기다려야 했었고... 사실 난 들어갈 생각도 없었는데 그분은 참 쌀쌀맞은 얼굴과 말로.. 내 통제를 막았었다.치... 여하튼 당시 내 느낌은 누구누구의 동생이라는 혜택은 어마어마해 보였였다.
그리고 난 당시 내가 고등부 교사가 되면 저렇게는 절대 행동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었었고....그런 영향으로 특히나 교사로 참석하는 수련회땐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더욱 하지 않았었다. 물론... 난 그렇다고 평소에 잘 치장하는 편이었나? 그건 결코 아니였지만...
여하튼 내 이런 좋지 못한 기억들은 나로 하여금 좀더 좋은? 좀더 솔선수범?하는 교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 건 분명하다. 그래서 난 고등부 교사를 할 때 학생들과 다른 숙소... 예를 들자면 샤워시설이 갖춰진 더 좋은 숙소로 배정받아 자는 잠자기를 거부?했었고, 수련회때 청소나 뒷정리.. 특히나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청소... 그런 것을 해야 할 땐... 시키기 보다는 그냥 내가 해버렸었다. 그리고 특히나 나쁜 자리에 앉은 학생이 있으면 부득불 우겨 내가 그 자리를 정말 원하는 것처럼 말하고 그 자리를 내가 빼앗아? 앉곤 했었다. (사실 소위 명당?자리라고 할 수 있는 자리를 보조교사라는 이름으로 온 샘들이 자리잡고 있는 건 말은 안했지만 참 얄밉게 보였었으니깐...)
어떤 학생들은 날 혼내기도 했었다. 왜 샘은 그런 일들을 학생을 안시키고 하고 있냐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교육적으로 좋지 못하다나? 샘이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나? 아이들이 고마와하는 것도 아니라나? 
근데...이렇게 쓰고 보니...  의도와 달리 남 욕하고 내 자랑한건가싶네.ㅋ
근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니... 내가 당시 받았던 것이 편애에 대한 분개?였다면... 나는 어쩜 그것과는 다르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편애의 모습으로 기억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왜냐면... 내 기억속에도 우리반이 아니었던 아이인데... 그 친군.. "샘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해요~" 그러면서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던 적도 있으니깐... 솔직히 난 우리반 아닌 아이들은 눈에 안들어왔었고 말로 표현할 때도 넌 우리반 아니니깐... 하면서 막 표현하는 차별대우를 했었었는데...쩝.
어쩜 이것이 더 나쁜 편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쩝.

여하튼 솔선수범...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말이 행동과 같았다. 나는??쩝.


하나님 제가 하는 말만큼이나 저의 행동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짐을 나눠지는 사람이 되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는 지금도 과거에 내가 교회학교 교사였다는 이유로 나를 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이름과 직분이 지금 내겐 맞지 않지만 바라기는 그 이름에 걸맞는 사람으로 누구에게나 유익함을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2: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계명이다.
39 두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인데 이것도 첫째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
40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46 아무도 예수님께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도 예수님께 감히 질문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하나님은 그 정도?를 네 모든 마음과 네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하라고 하신다. 음...
모든이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음... 어느 하나 쉽게 느껴지지 않는건 왤까?
바리새파사람들 또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선 한 마디도 대답치 못하고서는 그 이후로 아무도 예수님께 감히 질문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질문을 한다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난 사실 질문을 하는 편이라기보단 질문이 있어도 참는 편인데... 질문을 거의하지 않던 내 기억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고등부 2? 3?년때 우리 샘한테 질문을 한 것이 생각난다. 그 때 샘은... 김진홍? 김진웅? 뭐... 그런 남샘이셨고 집사님이셨는데 착하긴 했으나 그 분에게 어떤 영향을 받은 바는 없는 것 같다. 여하튼 당시 공과시간에 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그 십자가는 그 모양이 수평수직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셨었다. 그래서 난 그렇다면 이전부터 있던 십자가형이 예수님의 그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을 의미하기 위해 미리부터 생겼던 모양이고 형이라면 좀 그런것 아니냐고 그런 의미로 물었었는데... 여하튼 그 샘의 대답은 나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해서 난 그 이후로는 공과시간에 질문하는 무모함?을 행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에도 대학부를 가서나 청년부를 가서도 조장이 리더할 때 쓸데없는 질문을 삼가했었다. 왜냐면... 내 의문에 대해 조장들은 같이 궁금해 한다거나 좋은 질문이라고 말해주기보다는 시간내에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상당히 방해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난 내 마음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조장을 하길 좋아했던 것 같다. 엥?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가?? 지금 난 눈이 너무 많이와서 출근은 엄두도 못내고 아기가 잠깐 자는 틈을 타서 큐티를 하는데 우리 주혁이 지금 깼군.쩝... 빨랑 그만 하고 나가봐야겠군.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늘 질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 주시는 대답에 항상 만족할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고 그리고 주신 답때문에 계속 질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길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갈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사실 오늘은 그나마 출근을 빨리한 편인데... 큐티는 산만?해서 이제야 간신히 한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신다.
어쩜 나는 성경을 통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면서 참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닌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브라함은 죽었고 이삭도 죽었고 야곱도 죽었다. 내가 그들이 만났던 그 하나님을 내 삶속에서 만나지 않는다면 어쩜 내가 만나는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의 하나님, 내 삶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한다. 
왜냐면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그것이기 때문에 

살아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내가 살아서 만나길 원합니다. 나의 하나님 내 삶에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2:15 그 때,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공모했습니다.
16 그들은 자기들의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이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며, 하나님의 길을 올바르게 가르치시며,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으시므로 아무에게도 치우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17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18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의 악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20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얼굴이고, 누구라고 쓰여 있느냐?"
21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22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떠나갔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드는 생각은... 모랄까? 예수님의 방법은 모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극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때로 신앙의 이름으로 믿음의 이름으로 극단적인 발언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그것이 서로간에 큰 다툼의 근간이 되는데... 문젠 우리의 발언과 행동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드는 그 원인이 바로 스스로 만든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길 나는 믿음을 위해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라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어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께는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을 가지고 단지 나만의 믿음을 위해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들말이다.
나는 그동안 얼만큼이나 이런 짓?들을 행했을까? 
화평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내 모든 삶에 이런 잘못들을 제하시어 화평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떠나갔다고 한다.
떠나갔다? 왠지... 진짜 떠나가버렸다는 느낌이로군. 


하나님 바라기는 언어의 은사가 제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말이 사람들로 하여금 화평케 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 만들어낸 믿음의 허상을 위해 제가 극단적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1:27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내가 어떤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그가 첫째 아들에게 가서 말했다. '아들아, 오늘은 포도밭에 가서 일해라.'
29 그 아들은 '싫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중에 마음을 바꾸고 포도밭으로 갔다.
30 이번에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아까와 똑같이 말했다. 둘째 아들은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지 않았다.
31 두 아들 가운데서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첫째 아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의 나쁜 의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어떤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하는지 말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 생각은 말이다. 근데... 예수님은 그러시지 않으셨다. 
요즘 큐티를 하면서는 내 생각과 예수님의 행동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내가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테고...

나는 과연 큰 아들일까 작은 아들일까를 생각해 볼 때 그동안은 난 작은 아들보단 큰 아들쪽에 가깝지 않나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근데 오늘은 어쩜 작은 아들같이 살면서도 그래도 나는 큰 아들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하나님 저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뭐라고 대답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요? 말씀을 주실 땐 예~썰~ 대답하고선 아무 행동도 순종도 하지 않는 작은 아들같은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내 행동도 같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말씀의 강력함이 내 행동을 이끌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1:18 아침이 되어,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19 마침 길 옆에 있는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보시고, 나무 곁으로 다가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잎사귀만 있을 뿐 열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즉시 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0 이것을 본 제자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무화과나무가 그렇게 빨리 말라 버렸습니까?"
2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가 만일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내가 이 나무에게 한 것을 너희도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산더라 '산아, 들려서 바다에 떨어져라'하고 말하면, 이것 역시 그대로 될 것이다.
22 너희가 믿고 기도로 구하는 것은 모두 받을 것이다.

예전부터 이 말씀은 정황상 참 이해가 안가는 말씀이였다. 이 나무가 열매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배웠?었지만... 그래도 말이다.
예수님은 그것도 몹시 시장하신 상태셨고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를 말라버리게 한 후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이런 능력을 너희들도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목적?이시라면(이 목적이 아니었나?? 아닌 것 같기도 하군.) 시장함도 채울 겸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에 말씀 한마디로 무성하게 변화시켰다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내겐 든다.
너희들도 이렇게 의심하지 않고 구하면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이게 좀더 있어보이지 않나?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행하시지 않으셨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친절한 주석에서 자세히 그 이유들을 설명해 주긴 하지만... 

너희가 만일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너희가 믿고 기도로 구하는 것은 모두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대단한 특혜의 말씀이다. 에브리바디? 에브리띵? 같은 말씀처럼 참 멋진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모랄까 내겐 참 실효성?이 적어보이는 말씀이기도 하다.쩝.

내가 구하는 것을 모두 받지 못하는 건 의심 때문인건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할 수 있는 비법은 없을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 구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받고 있진 못합니다. 아마도 구한 것 중에 받지 못한 것들이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의심함으로 구해서 인가요? 하나님 왜 저는 의심을 하면서 구하는 걸까요? 의심없이 믿기만 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그런 온전한 믿음을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그 온전한 믿음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바른 구함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1:8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옷을 벗어 길에 깔았고, 나뭇가지를 잘라 똑같이 했습니다.
9 예수님의 앞뒤에서 따라가던 사람들이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복되도다! 높은 곳에서 호산나!"
10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을 때, 온 도시는 흥분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 이 사람이 누구냐?"
11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예언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환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온 도시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그들은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 복되도다! 높은 곳에서 호산나!"를 소리쳤다.
그들이 과연 그 의미들을 정확히 알고 그렇게 외쳤나 궁금해진다.
왜냐면 그들은 단순히 예언자정도로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으므로...
예언자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더라도... 저렇게 그럴싸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인가 궁금해진다.
어쩜 그들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성령의 능력에 의해 예수님의 필요들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어떤 당나귀 주인도 주님이 필요하시답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즉시 내어 주게 되는 것과 같이 예언자의 말한 것이 성취되기 위한 강력한 능력이 이 모든 일들을 지휘하여 수행자들이 미쳐 그 행동이 본심과 일치하지 않게 되더라도 행동하게 된다는... 내 삶속에서도 내가 미쳐 뒤따르진 못하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내 이해를 넘어서 내 행동으로 하나님께 사용되어짐이 있겠구나 싶다. 물론 본심과 행동이 일치하면 정말 좋겠지만... 미쳐 내가 못미치더라도 사용될 수 있는 영광이 있겠구나 싶다.

하나님 잘 표현은 안되지만 이렇게라도 사용되는 자들이 복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나귀를 예수님께 거저 드렸던 자나 자기 옷을 벗어 길에 깔면서 호산나를 외쳤던 자들이나 그들이 자신의 한 행위가 얼마나 귀한 행위인지 깨달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게 위한 행동들이 필요할 때 하나님 제가 선한 역할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시85:6 다시 한 번 우리를 살려 주소서. 그러면 우리가 주께 감사하며 주를 기뻐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편인가 보다. 이렇다하게 다가오는 말씀이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끼긴 그렇고... 그래서 굳이 한 절을 적어본다. 
위 한 절을 통해 뜬금?없게도 은혜의 하나님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맨날 맨날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그 때마다 다시는 안그럴 것처럼 다시 한 번 우리를 살려주소서라고 외치는데도...
그저 잘못을 깨닫고 돌아와서 살려달라고 외치기만 하면 늘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참 해푼? 분이신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선 더욱 감사한 일일테지만...
위 말씀은 조건적인 감사며 기뻐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살려달라고 메달리는 것이겠지?

하나님 아쉬움이 커지면 다시는 안그럴 것처럼 하나님께 메달리지만 등 따시고 배 부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죄를 짓는 것이 저희들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죄를 안지면 좋겠지만 죄를 짓게 되더라도 항상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만은 잊어버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어찌어찌해 주셔야만 그제서야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저희들이지만 살면서 어떠한 조건이 없이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회복의 역사가 회복이 필요한 곳곳에 임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9: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24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27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저희에게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2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나를 따라오는 너희들은,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는 새 시대에,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부족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
29 나를 위하여 집, 형제와 자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밭을 버리는 사람은 몇 배로 보상을 받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30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부자청년을 보면서도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컸었는데 오늘 말씀을 보니...다소? 부러움이 가신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다. 집채?만한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임파셔블한 일인데 그보다 더 어렵다고 하시니... 부잔 안됐다. 허나 하나님이 그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심으로 부자들도 구원하시니... 여하튼 구원받는 부자는 진짜 진짜 복받은 사람이로군. 그럼 가진 것을 베풀 줄 알아야 하는데...쯧쯧쯧다. 만약 내가 여기에 해당하는 부자였다면... 난 과연 얼마나 베풀면서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도 쯧쯧쯧일 가능성이 상당하겠군.쩝.
여하튼 현재가 감사하다는 생각도 다소? 든다.
근데 베드로는 왜 이런 질문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저희에게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는 베드로가 모랄까 이런 질문도 안하고... 이후에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 달랑? 구원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기뻐할 사람이길 기대한다. 그래야 적어도 수제자답지 않을까 싶은데... 여하튼 베드로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가 보다.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근데... 질문처럼 예수님의 대답도 예상 밖이라고 할까? 28, 29절만이 아니라 그러나로 시작되는 30절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는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 기분은 어땠을까? 꼴찌라고 생각했는데 첫째가 되는 사람은 좋겠지만 첫째라고 생각했는데 꼴찌가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러고 보니... 어제 경기했던 네델란드 크라머 기분이겠군.쩝. 난 과연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는 새 시대에 몇 번째 그룹에 속하게 될까? 잘 살아야겠군.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줄어들었습니다. 부자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것은 아주 아주 어려운 것이로군요. 하나님 제게는 제게 주신 물질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물질이 하나님을 우선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 땅에서의 부자도 좋겠지만 하늘에 보물을 쌓아둘 수 있는 그런 실질적인 부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그동안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그것이 시간이든, 그것이 물질이든, 뭔가를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드리고 희생했다고 생각하면서 이후에 더 많은 것들로 보상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사는 마음이 제게 있었습니다. 근데 오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를 바라는 마음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이 잠깐 들었다고 제가 달라지긴 쉽지 않겠지만... 하나님 제 마음이나 행동이 주객이 전도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하나님 바라기는 우리 가족들이 지금을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꼴찌도 안되는 모습?이지만 때가 되면 첫째들이 될 수 있게 변화시켜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한 잔을 먹으려고 하니 물이 딱 떨어졌다. 정수기에 물을 꽂아야 하는데 물이 상당히 무거워서 난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했는데 오늘은 적당히 부탁할 사람도 없고 해서... 내가 들 수 있을까? 한 번 들어나 볼까?해서 들어봤더니.. .
웬걸.. 비교적 잘 들린다. 완전 거뜬히 가볍게 든 건 아니지만... 간신히라도 들어서 정수기통에 꽂을 수 있었다.
사실 이 물통 1.89리터를 안들어 본 건 아니였다. 결혼 전에도 몇 번 시도했지만 영 들어올릴 수 없어서 조금 들다 포기했었고 그래서 난 이건 못드는 줄 알았었었다. 생각해 보니... 옛날 태화에서 잠깐 알바할 때 그 때도 내가 못들어올리니깐... 아들 둘을 둔 예쁜 아줌마가 ㅎㅎㅎ 웃으면서 거뜬히 올려줬었는데... 물론 그 분은 뚱뚱한 힘쎈 아줌마도 아니였고...
여하튼 앞으로는 이걸 다른 사람한테 부탁한다는 것이 좀 민망해져버렸다.
내가 이렇게 능력이 많아진 건... 다 우리 아들 덕분인 것 같다.ㅋ
마19:13 그 때, 사람들이 자기의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이들을 꾸짖었습니다.
20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금까지 다 지켜 왔습니다. 그 밖에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2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완전해지길 원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 와서 나를 따르라!"
22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매우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재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서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랐다고 한다.
부모들의 마음이 자녀사랑 때문에 이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아님 이기심? 때문에 이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그리고 제자들이 이들을 꾸짖었던 것도 어쩜 이기심은 아니었나 싶다.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사랑한다는 말로 포장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기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부자청년이 나온다. 참 훌륭한 청년인 것 같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실한 청년같고... 여하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청년인 것 같다. 게다가 재산도 많은 부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외모도 아주 출중했을 것 같다.
질문없이 그냥 그대로 살았다면 음... 자기만족함 + 주변의 칭찬과 부러움도 받으면서 살아갔을 것을 괜한?? 질문을 하여 매우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한다. 그 후의 그의 행동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부자이면 고민이 많아지게 되는 걸까?
난 나이가 들면서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더 커지던데... 재산이 많다는 것도 나름이 고충이 많은가보군.쩝. 그래도 부자면 좋겠는데...^^


하나님 저도 예수님께 제 자녀를 데리고 나와 예수님께서 손을 얹고 기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근데 그 행동의 동기들을 살펴보면 글쎄 왜 그럴려고 하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축복해 주시면 좋으니깐? 그런 막연함이나 하나님께서 주실 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은 아닌지요. 사실 본문에서 그 행동이 결코 나쁜 행동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가 제 자녀에 대해 이기적인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부자청년을 보면서 그가 부자인 것이 참 고민이겠구나 참 안됐다 생각되기 보다는 그냥 그가 부자인 것이 부러운 건 왜인지요... 살면서 부자에 대한 부러움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말씀하시길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하나님 살면서 이런 것들로 고민되는 상황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적당한 충족함을 주시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9:5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할 것이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6 이처럼 두 사람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나님께서 묶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마라.
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내와의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 마음이 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만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이와 같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결혼식 주례에서 많이 듣는 말씀이다. 나도 이 본문이였나?? 사실 주례사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왜지??
여하튼 결혼을 하면 두 사람이 한 몸이 된다고 하신다. 한 몸이라...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일 것 같은데... 그 깊은 뜻을 난 잘 모르겠다. 사실... 살면서 한 몸이 되어간다고 느낀다기 보단...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느낀다고나 할까?
하긴 생각해 보니.. 둘이 아닌 하나가 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함이 느껴지는군. 다른 것들을 맞추어가는 양보도 많이 필요하고...
근데 참 의외?인 건... 제자들의 반응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만일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가 이와 같다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한다. 음......
여하튼 결혼한 날수가 더해지면서 서로 다름을 확연히 느끼면서 일종에 포기?라면 포기?를 하는 삶이 되기 보단 하나님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결혼의 원리대로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감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결혼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하나님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리에서 벗어나서 부정을 저지름으로 또는 악함으로 인해 이혼하는 부부들이 참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결혼의 원리를 바로 알아서 결혼이 주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8:33 내가 네게 자비를 베풀었던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않느냐?
35 이와 같이 너희가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같이 하실 것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나와 내 이웃과의 관계
그 연관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계명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속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만을... 그리고 나와 내 이웃과의 관계속에서는 이웃들의 자비만을 원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이 어느 쪽이든 수혜자이길 원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쩜 여기서의 논리도 기브앤테이크?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하나님 제게 베풀어주신 그 자비를 제가 내 이웃에게도 베풀수 있길 원합니다. 받은 바를 나눌 수 있는 제가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7:20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어서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향하여 '여기서 저기로 움직여라' 말할 것이다. 그러면 산이 움직일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늘은 여건상 짧게...
겨자씨는 씨앗 중에서도 참 작은 씨앗이라고 들었다. 근데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그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도 있고 우리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다. 이건 완전 대박? 믿음 로또?같은 믿음 아닌가??? 
그렇다면... 이 말씀에 비춰보면 나의 믿음은.... 여하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안된다는 것 같은데...쩝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어서라고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아주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보다도 더 적은 믿음이라... 그게 바로 내 믿음의 크기인 것 같은데... 그건 도대체 얼마만한 믿음인거람?
하긴 적다는 의미랑 작다는 의미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왠지 적다라는 말은 수적인 표현으로 반대는 많다이고... 작다는 말은 크기의 표현으로 크다의 반대말같은데...
어렵다 믿음이라는 것의 표현도...

하나님 오늘 말씀에선 제자들이 믿음이 적어서 혼?이 났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으로도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씀하시는데...왜 그렇게 작디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는걸까요?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은연 중 내 믿음이 겨우 겨자씨만한 것이겠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쩜 순도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그것이 순도 100%라면 산도 옮기고 뭐든 할 수 있는 것이고 집채만한 크기의 믿음이라도 그것이 허울에 불과하다면 아무 것도 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바라기는 겉으로 보이는 크기에 상관없이 겨자씨만하더라도 그 순도가 높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평소보다 짧은 것도 아니구만.

마17: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째서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1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1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다. 이처럼 인자도 그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것이다."
13 그 때서야,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다. 이처럼 인자도 그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큐티에선 자기들 마음대로 하였다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그를 어이?없이 죽였다. 
자기 마음대로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서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꼭 나쁜 의미의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 그것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냐에 따라... 충분히 좋은 의미가 될 수 있는데... 아쉽다.
내 마음... 그건 어디에 있고 어떤 상태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바라기는 내 마음대로 행해도 그것이 충분히 하나님의 마음과 같을 수 있게 내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고, 정결함을 유지할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행한 것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 바라기는 제 마음대로 행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길 원합니다. 제 마음을 지켜주시고 늘 하나님을 향하게 하시며 정결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6: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말렸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주님!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예수님께서 돌아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썩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리는 베드로를 향해 지적하신 것이 "사탄아, 내 뒤로 썩 물러가라!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였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임에도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는 것으로보아 베드로의 발언의 영향력이 사탄이라는 말씀이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제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향력에서의 발언이었다고 하셨었다.
오늘도 그렇고 어제도 그렇고 베드로가 베드로의 입으로 표현했던 말들임에도 아주 상반된 평가가 내려졌다.
상반된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은 그 말의 원동력?은 단순히 베드로가 아니라는 것이고...

어제 난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집에가서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남편에게 말했고... 근데 내 예상과 달리... 사실 내 예상은 남편이 날 칭찬까진 아니더라도 속으로라도 내가 잘한다고 생각해줄지 알았는데... 여하튼 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남편은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했고, 그렇지만 난 여하튼 나를 위해서... 날 말리는 남편의 말을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서보면 일종에 무시?를 하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싶은데 이것을 남편이 말린다고... 그래서 이렇게 행동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시부모님께 말씀을 드려버렸다. 내 이 발언이 가질 영향력?을 생각하지도 못하고서 말이다.
결과는 내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들이 되었고 내 덕분?에 남편은 일종에 나쁜? 아들이 되어버렸고...
어떻게 내 좋은 의도가 이렇게 망쳐질 수 있는 것인지... 게다가 나는 이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남편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고...
뒤늦게 든 생각이긴 하지만... 여하튼 내 발언이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못한 많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솔직히 내 발언은 나만을 위한 일종의 이기심에서 출발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 말씀 중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는 말씀이 있다. 어제의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살면서 나는 수도 없이 많은 말을 하게 될텐데... 그 대부분의 말들은 내 중심적인 말들일 것이다. 비록 내가 선한 의도를 가졌다고 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의 평가의 잣대에선 그것이 사탄의 영향권에 속해져서 하게 되는 말들은 또 얼마나 많게 될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렵다 참...

하나님 제가 하는 말들을 주관하여 주시고 그것이 때로 사단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앞으로는 내 중심적인 이기적인 발언을 줄여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6: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되다. 네 혈육이 이것을 네게 알려 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신다.
베드로의 대답에 칭찬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니가 복된데 이는 이것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이라신다.
같은 질문을 하셨을 때 과연 나는 뭐라고 대답할 것이며... 이 대답이 혈육이 네게 알려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대답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공식같이 외워진 그런 답으로의 예수님이 아니라 오늘 말씀처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셔서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과연 내 대답에도 베드로에게 하셨던 동일한 반응을 보여주실지 자신이 없어집니다. 하나님 인도해 주세요. 그래서 저도 복된 고백을 할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4:23 사람들을 보내신 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홀로 산 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때까지 그 곳에 혼자 계셨습니다.
24 배는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큰 파도와 거친 바람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25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30 그런데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자, 겁이 났습니다. 물에 빠지기 시작하자,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31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잡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
32 베드로와 예수님이 배 안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홀로 산 위에 올라가셨을 때 제자들은 배에 있었고 그 때 제자들은 큰 파도와 거친 바람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고...
베드로가 "주여, 정말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소서"라고 말하고 잠시동안?이지만 걸어갈 때도 중요한 건 여전히 큰 파도와 거친 바람은 있었다고 추측된다. 32절에서야 바람이 잔잔해 졌던 것 같고...
즉 베드로가 의심을 할 때나 의심하지 않을 때나 베드로가 믿음 충만할 때나 믿음이 적을 때나 상황은 동일하게 어려운 상황이였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서 뭐랄까? 어려움이라는 상황이 우리의 믿음에는 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모랄까? 베드로가 물위를 걷기 전에는 풍랑이 심했으나 예수님께서 오너라라고 말씀해 주셔서 갑자기 풍랑이 잠잠해 졌다고 하더라도 베드로는 물에 빠지게 되서 똑같은 상황이 연출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윤... 베드로가 물위를 걸을 때 그 촛점을 예수님께 두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동안 어려움을 겪게 되면 마치 그 어려움 때문에 있던 믿음이 적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의심함이나 믿음없음을 정당화시키려 했는데 사실 그건 잘못된 논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촛점이 문제에 고정되어 있느냐 아니면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희정이가 보내줬던 장목사님 설교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요즘 반복해서 다시 듣는데 어제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문제는 작게 보고 하나님은 크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것이 믿음이 자세라고...(정확한 표현맞나??)
(거친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니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이 찬양이 생각나는군.)

하나님 저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저의 초점이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제 초점이 상황이나 문제에 고정되지 않게 하시고 늘 하나님께 고정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어느 상황에서나 믿음이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4:15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이 곳은 외딴 곳이고, 시간도 너무 늦었습니다. 사람들을 이제 보내어,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각자 사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17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뿐입니다."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들을 내게 가져오너라."
19 사람들을 풀밭에 앉게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떼어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20 모든 사람들이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들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21 먹은 사람은 약 오천 명이나 되었는데, 이는 여자와 어린이가 포함되지 않은 숫자입니다.

오늘 말씀엔 그 유명한 오병이어가 나온다.
근데... 예전엔 미쳐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에 관심이 가진다고나 할까?
그건... 말씀을 읽어보면 뭐랄까? 이 상황속에서는 아무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자신들의 배고품을 해결해 주길... 기대하지 않는 상황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내 느낌은 뭐랄까? 현재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꼭 필요한 시점이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 상당 수는 어쩜 기적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길 기대하고 쫓았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나 병든자는 병을 고치려고, 아니면 각자 나름의 기대를 안고 예수님을 쫓았던 사람들이...
허나 지금 상황은... 예수님께서 굳이 그 모든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필요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었다고 생각됨에도 예수님은 굳이 그 놀라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왜일까?
차라리 모든 사람들이 잔뜩 기대할 때 그 때 행하셨다면... 훨씬 멋져?보였을텐데... 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시점에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을까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여하튼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타이밍은 사람들의 기대하는 타이밍과는 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하지 않던 순간에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 이 사람들은 과연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어쩜 예수님께 더 많은 기적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고민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을지도... 아... 이 분은 언제 어느때나 우릴 먹이실 수 있는 분이야 하면서... 허나... 수시로 오병이어를 행하셨다고는 안나오니깐... 후에 진짜로 오병이어를 기대하고 기다려도 그냥 배고푼 상황만 유지되었다면...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나님 오늘 말씀 속에는 오병이어가 나옵니다. 정말 이것은 대단한 기적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배불리 먹었을까요? 상상이 안갑니다. 근데 이런 상상이 안가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다릴 때 행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행하신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적기라고 생각하셔서 그 때 일하신 건가요?
기적이 중심이 되지 않고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그 타이밍을 원하셔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그 이유가 그저 따르는 이들을 배불리 먹이고픈 마음 때문에 행하셨던 것인가요?
제 인생에서는 무언가를 기대할 때 그것도 간절히 기대할 때 생각해 보면 그 타이밍은 항상 제 위주로 설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그 타이밍에 뭐든지 주셔야 감사하지 그게 아니라면 불평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횟수가 줄어들길 원합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기적보다더 하나님의 마음을 더 기대할 수 있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4:3 헤롯은 예전에 요한을 체포하여 결박하고, 감옥에 가둔 적이 있었습니다. 헤롯이 이렇게 한 것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 때문이었습니다.
4 요한이 헤롯에게 "당신이 헤로디아를 아내로 삼은 것은 잘못이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5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두려웠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요한을 예언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9 왕은 망설였지만 자기가 한 맹세 때문에,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던 손님들 때문에 요한의 머리를 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10 그는 사람을 보내어, 감옥 안에 있는 요한의 머리를 베게 하였습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요한이 죽음에 이르는 경위가 참 어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좀 뽀대나게 죽었으면 얼마나 좋은가하는 바램이 난 사실 크다. 
당시 유일무이?한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요한을 굳이? 어린아이의 장난?스런 말 한마디로 인해 목이 베어지게 된다는 사실이... 게다가 이것을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된다기 보다는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이해하던 이해하지 못하던, 이해하고 싶던 이해하고 싶지 않건간에 모랄까 하나님의 넓더넓은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나 할까?
여하튼 하나님은 참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르시다. 그걸 인정해 드리는 것이 바로 우리 몫이고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모습으로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하나님~ 하나님은 내 이해의 폭을 넘어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항상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요한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싶어하시는 것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 주세요. 요한의 죽음 뿐 아니라 제 삶의 모든 영역속에서도 이해를 넘어서는 모든 현상들을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시고 깨달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편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제까진 제 편이 되어주세요라는 요구를 많이 하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하나님편이 될 수 있는 제가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중에 든 생각인데...
이런 죽음을 요한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드릴만했기 때문에 이런 죽음을 요한에게 허락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랄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든 전혀 시험에 들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믿을 믿음이 충분했다는...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겸손한 죽음을 허락하심으로 그에게 주실 상을 더 극대화시키셨다는 생각도 든다.
마13: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또 다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심은 사람에 빗댈 수 있다.
29 주인이 대답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뽑을 때에 밀도 함께 뽑힐라.
30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게 놔 두어라. 추수할 때,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 묶어서 불에 태우고, 밀은 거두어 곳간에 쌓으라고 하겠다."

추수할 때까지 함께 자라게 놔 두길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그 마음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봐야겠다.

하나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빨리빨리보다는 천천히를 좋아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수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임을 오늘 큐티를 통해 느낍니다. 하나님 저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께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닮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추수의 기쁨... 저도 느끼길 원합니다. 저의 모든 가족들도 자기 밭에 좋은 씨가 심겨져서 추수할 때 밀로 추수되는 기쁨이 임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3:18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라.
19 누구든지 하늘 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가 버린다. 이런 사람은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이다.
20 돌무더기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들을 때, 기쁘게 얼른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21 그러나 뿌리가 없어 오래가지 못한다. 말씀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고 박해를 당하면, 곧 넘어진다.
22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가로막아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한다.
23 좋은 땅에 떨어진 씨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육십 배, 어떤 사람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

내가 말씀을 듣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난 말씀을 들을 때 진심으로 그 말씀을 깨닫길 원했나를 생각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때가 되서 들어야 하니깐... 들었고... 습관?처럼 들었던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때론 그 말씀이 길가에 뿌려진 씨처럼 전혀 깨닫지 못해 악한 자가 와서 다 빼앗아갔던 적도 있었고
때론 기쁘게 얼른 받아들이곤 어려움이 생기면 곧 넘어지고,
때론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말씀이 가로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물론 듣고 깨닫아서 열매를 맺혔던 적도 있긴 했지만... 전자들에 비하면 그 수가 많진 않았던 것 같다.
난 매일? 큐티를 하면서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있다. 매일?의 듣는 말씀... 이 말씀들은 과연 어디에 씨가 뿌려지고 있는걸까?
나 스스로도 좋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확신은 없다.
하기사... 시간이 지나서 열매의 여부를 보면 어떤 땅에 뿌려졌는진 알 수 있는 것이고... 과거의 말씀들이 지금 열매로 나타나고 있느냐를 생각해 본다면... 글쎄...

듣고 깨닫는다는 것 이것을 오늘 말씀에선 열매로 표현하셨다. 고로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는 것은 구체적이 된다는 것이다.
매일 큐티를 통해 듣고 깨닫고 있다고 나 스스론 생각하고 자족?하지만 만약 그것이 열매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평가의 잣대에선 미달이 되는 것이다.
열매... 오늘부터는 열매를 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쉽진 않겠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 그저 주어지는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땅이 되는데는 하나님의 주권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우기기에는 무리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그것이 열매로 나타나길 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3: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왜 사람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십니까?" 
11 예수님께서 대답하였습니다. "너희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12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것이 주어져 풍부해질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너희들에게는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허락이라...
그래서 그것이 복이라고 하신다.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앎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물론 여기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에 대한 대답이시지만...) 여하튼 나의 앎에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 아직도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겐 하나님의 허락됨이 없어서일까?? 이건 잘 모르겠군.

하나님 바라기는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오는 복을 허락해 주시길 원합니다. 하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는 하나님의 허락함이 임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받았던 복이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보고 싶어했지만 보지 못했던, 듣고 싶어했지만 듣지 못했던 귀한 것들임을 알고 주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인지를 알길 원합니다. 제가 바라고 원하는 것 이상으로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2:38 그 때, 몇몇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3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악하고 죄 많은 이 세대가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나 예언자 요나의 증거 외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
43 "더러운 영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아 물이 없는 곳에서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44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돌아와보니 그 집이 여전히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깨끗이 청소되고 정리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45 그 때, 그 더러운 영이 나가서 자기보다 훨씬 더 악한 일곱 영을 데리고 왔다. 그 영들 모두 그 사람에게 들어가 살게 되어,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이렇게 될 것이다."

악한 세대라...
하나님께서 지칭하시는 그 악한 세대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구한다.
그리고 그 악한 세대는...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증거를 구하는 것을 안좋게 보시는 이유가 그들의 동기가 불순해서 일까?

난 사실 증거보길 좋아한다. 그리고 어쩜 내가 대부분 기도하는 내용도 그 말만 달라질 뿐이지 궁극?적으로는 증거를 보여 주세요라는 요구?가 아닌가 싶다.
오늘 말씀에 비춰보니.. 당시 악하고 죄 많은 이 세대가 구했던 그 증거를 나 역시도 같은 모습으로 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뭐.. 그렇다고 하나님이 증거를 구하는 것 그 자체를 나쁘게 보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구함에 있어서의 나의 진심을 돌아보게 된다.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된다는 것...
서선교사님 설교나 책을 보면 그분이 바라시는 소망이 나오는데.. 웃시아 왕처럼 처움이 좋고 나중이 나쁜 왕이 아니라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처음보다 끝이 좋은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나도 소망한다. 내 나중이 처음보다 지금보다 더 좋길... 그 평가를 하나님께 받고 싶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제가 하나님을 자꾸 이용할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내 위주로 움직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제겐 꽤나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오늘도 하나님께 증거를 보여주세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동기에 불순물들이 있다면 제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면서 간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오직 하나님 위주의 하나님의 능력이 저의 가정에 임하길 원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 나중이 좋은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럴 수 있게 늘 저를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죄나 신성 모독의 말은 다 용서를 받겠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32 인자를 거역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하는 말을 하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3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사소한 말이라도 심판의 날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
37 네 말에 근거하여 네게 의롭다고 판정을 받을 수 있고, 죄가 있다면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내 사고속에는 은연 중 성부>성자>성령의 구조?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성령충만, 성령충만 참 많이들 강조하고 이에 대한 말씀도 참 많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은연 중 성령님을 하대하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근데 오늘 말씀엔... 윽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성령을 거역하는 말을 하면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난 사실 어떤 것이 성령님을 모독하는 죄인지조차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성령을 거역하는 말이라... 어떻게 말하는 것이 성령을 거역하는 말이였을까?

무심코 내뱉은 사소한 말이라도 심판의 날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신다. 네 말에 근거하여 네가 의롭다고 판정을 받을 수도 있고, 죄가 있다고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고...
오늘 말씀은 모랄까? 구약성경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은혜의 시대에 와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 그것만 관심있던 차에 모랄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 말씀의 무거움이 확 느껴진다고나 할까?
여하튼 내 말에 책임을 져도 전혀 꺼리낌이 없는 자가 되길 원한다. 성령님께서 날 제어해 주셨으면 좋겠다.

하나님 저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성령을 거역하는 말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는 이유로 저지르는 죄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죄인지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그와 같은 죄를 짓지 않게 도와주시고 내 말을 성령님께서 늘 제어하여 주셔서 내 말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판정을 받을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