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39:11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을 시켜 예레미야에 관해 명령했습니다.
12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그를 잘 돌봐 주어라. 그를 절대로 해치지 말고 무엇이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라."
15 예레미야가 아직 경호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가서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에게 전하여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이제 곧 내가 예루살렘에 관해 한 말을 그대로 이루겠다. 내 말은 평화가 아니라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 날에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다.
17 나 여호와가 말한다. 그 날에 내가 너 에벳멜렉을 구해 주겠다. 너는 네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않을 것이다.
18 내가 너를 꼭 구해 주겠다. 너는 칼에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 여호와를 의지했으므로 내가 너를 살려 주겠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에벳멜렉...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그에게 말한다. 재앙이 나타날 것이나 그 재앙을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나 내가 너는 구해주겠다고... 너는 칼에 죽지 않을 것이라고... 왜냐면... 네가 나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내가 너를 살려 주겠다고...
그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가? 그리고 그걸 전하는 예레미야는 기분이 어땠을가?
여하튼 그가 살게 된 이유는... 단지 하나?다. 여호와를 의지했다는 것...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가지는 그 의미와 내게 있어서의 그 의미를...

하나님 바라기는 에벳멜렉이 가졌던 그 하나님을 의지함이 제게도 항상 있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익숙?해지게 하시고 생활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9:1 시드기야가 유다 왕으로 있는 지 구 년째 되는 해 열 번째 달에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모든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서 성을 에워싸고 공격했습니다.
2 시드기야가 왕으로 있은 지 십일 년째 되는 해, 넷째 달 구 일에 마침내 성벽이 뚫렸습니다.
8 바빌로니아 군대가 왕궁에 불을 지르고 예루살렘 백성들의 집에도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어 버렸습니다.
9 경호대 대장인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항복한 백성과 나머지 백성을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습니다.
10 그러나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은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들에게 포도밭과 땅을 주었습니다.

드디어 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공격했고 성벽이 뚫렸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그가 보는 앞에서 죽었고 그는 눈을 빼인 채 쇠사슬로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그들은 이런 결과들을 맞게? 되면서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하나님의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끼기나 했을까? 진작 하나님 말씀 잘 들을 걸 하는 후회가 있기나 했을까?

경호대 대장인 느부사라단은 유독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백성들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들에게 포도밭과 땅을 주었단다. 음...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처럼 예루살렘성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고생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들은 이와 같은 말씀의 성취?를 어떻게 느꼈을까요? 그들은 그 포로생활동안 무엇을 느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경험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차선인 부정적인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최선인 긍정적인 성취를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는 한 날이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7:13 ~ 이리야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체포하면서 "당신은 우리를 배신하고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러 가고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14 예레미야가 이리야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소. 나는 바빌로니아에 항복하러 가는 길이 아니오." 그러나 이리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체포하여 왕의 신하들에게 데려갔습니다.
16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지하 감옥에 끌려가 여러 날 동안 갇혀 있었습니다.
17 그후에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왕궁으로 불러들이더니 몰래 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이 없소?" 예레미야가 대답했습니다.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이여, 왕은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넘겨질 것입니다."

오늘도 말 안듣는 사람이 나온다. 이리야...
그는 예레미야가 하는 말을 듣지 않고 그를 체포한다.
덕분에 예레미야는 갇히는 신세가 된다.
성경상엔 이런 경우는 정말 허다하다. 의인이 당하는 고난...
그러므로... 하나님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왜 하나님 일을 하는 자들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정녕 하나님 계십니까?라는 질문은 사실... 어떤 의미에선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인 것 같다. 모랄까? 하나님은 그들이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서 그들로 그 상황에 처하도록 두고 보신다기보단... 그들에게 이미 그 상황의 여부를 초월해서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기에 상황을 변화시켜면서의 적극적인 도움이나 그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잠잠하실 때가 많으시니깐...

한 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젠 하나님도 안믿는 사람인데... 젠 모든 것이 잘되고, 난 기도까지 하면서 열심히 구했는데 잘안되고... 그럴 때 하나님께 의문과 불만이 있었었다. 그렇다고 내게 딱히 나를 만족시킬 답을 주시지도 않으셨고 내가 만족할 상황도 허락하시진 않으셨었다. 그저 내게... 주신 것이 있다면... 아무런 상황의 변화가 없어도... 아니면 그 상황이 더욱 나빠지더라도... 그저 견딜 수 있는 마음과... 그리고 그 마음이라는 것이... 억지같은 감사가 아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고 하나님이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이 외형상 전혀 없음에도 더이상 불만스럽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를 허락하셨을 뿐... 
어쩜... 지금도 나는... 왜 하나님을 믿는데 잘 안풀리는 걸까하는 의문을 계속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런 의문은 앞으론 정말... 내려놓아야할 것 같다.
이 정도?? 믿었으면... 이젠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믿음도 있을 법한데... 이점에선 참 발전이 더디다.  

하나님 저는 사람들의 말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듣는 척만 하지 말고 진심으로 귀을 기울여서 들을 수 있는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자기 할 만만 하고 듣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나이가 들면서 완고해 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유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환경이나 상황을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들지 말고 곡해하지도 않게 도와주세요.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상황을 초월한 만족함이 늘 있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7:1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유다 왕으로 세웠습니다. 시드기야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대신해 왕이 되었습니다.
2 그러나 시드기야와 그의 종들과 유다 백성은 여호와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신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3 시드기야 왕은 셀레먀의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예레미야여, 우리를 위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6 여호와께서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여후갈과 스바냐야, 너희를 보내어 나에게 물어 보도록 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전하여라. '보아라, 너희를 도와 바빌로니아 군대를 치려고 온 파라오의 군대는 이집트 땅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8 그리고 바빌로니아 군대가 다시 와서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점령하여 불태워 버릴 것이다.'
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백성아, 너희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바빌로니아 군대가 너희에게 떠나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절대로 철수하지 않는다.
10 혹시 너희가 바빌로니아 군대를 다 물리치고 바빌로니아 군대의 장막에 부상당한 사람들만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각각 자기 장막에서 나와 이 예루살렘 성을 불로 태워 버릴 것이다.'"

시드기야 왕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은 듣지 않지만...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여, 우리를 위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시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나의 바램만은 하나님이 들어주시길 요구하는 모습이다.
근데 하나님은 "예루살렘 백성아 너희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바빌로니아 군대가 너희에게 떠나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은 절대로 철수하지 않는다. 혹시 너희가 바빌로니아 군대를 다 물리치고 바빌로니아 군대의 장막에 부상당한 사람들만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각각 자기 장막에서 나와 이 예루살렘 성을 불로 태워버릴 것이라고...

어제 퇴근하면서 다운받은 말씀을 한편? 들었다. 본문은 이곳이 아니였지만... 내용은 일맥상통한다는...
하나님은 악한 짓을 한 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기 위해 그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신다. 그런 방법을 이해할 수 없는 하박국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도 막상 어려움 앞에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시드기야 왕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속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이 그들보다 더 악한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허나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에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해되지 않아서 믿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6:23 여후디가 서너 단씩 읽을 때마다 왕은 서기관의 칼로 두루마리를 베어 내더니 난롯불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왕은 두루마리 전체를 난롯불에 넣어 태워 버렸습니다.
24 여호야김 왕과 그의 신하들은 두루마리에 적힌 모든 말씀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고 슬퍼하는 표시로 자기들의 옷을 찢지도 않았습니다.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여호야김 왕에게 두루마리를 태우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으나 왕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26 오히려 왕은 왕자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보내어 서기관 바룩과 예레미야를 붙잡아 들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룩과 예레미야를 숨겨 주셨습니다.
27 여호와김 왕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고 바룩이 받아 적은 두루마리를 불태운 뒤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8 "예레미야야,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태운 첫 번째 두루마리에 적혀 있던 그 말들을 거기에 모두 옮겨 적어라.
32... 예레미야가 불러 주면 바룩이 두루마리에 받아 적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불태워 버린 책에 적혀 있던 말씀을 그대로 적었고 그와 비슷한 많은 말씀도 더 적어 넣었습니다.

어제 내 예상은 빗나갔다. 난 그들이 그 기록된 말씀을 듣고 왕에게 고하여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었는데... 왕은 두루마리를 불태워버리는 행동을 취했다. 왕이 불태운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그 말씀이 진짜 두려워서 그런 행동을 취했던 건 아닌가 싶다. 두렵지 않았다면 무시해 버려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어떤 의미에선 그들은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씀이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불길한 미래에 대한 믿음?말이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모랄까? 믿음이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것... 이상적인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하나님도 원하시지 않고 나도 원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생기는 불길한 믿음?...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밝은 미래를 꿈꾸고 기도하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은 불길한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면서 어느덧... 전자보다는 후자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게 된다는...

어제 퇴근하면서 희정이가 보내 준... 순종만이 살길이다. 순종이 안전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속에서... 지금은 인터넷상으로도 언제든 말씀을 접할 수 있는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셨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말씀에 거부하는 삶이 반복되다보면.. 어느덧 말씀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말씀의 기갈상태를 경험하게 된다고...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반복되다보면... 말씀에
정말 그런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여호야김 왕이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받아드릴 수 없는 말씀의 기갈상태인 것 같다.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게다가 그 말씀을 받아드릴 수 있는 것... 그게 어떤 무엇보다도 큰 복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나님 여호야김 왕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들었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바라기는 말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살면서 말씀을 듣지 않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듣지만 안들은 자처럼 행동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큐티동역자들이 혼자서만 보이지 않게 큐티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큐티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6: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예레미야야,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요시야가 왕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와 온 나라에 대해 네게 한 모든 말을 기록하여라.
3 혹시 유다 집안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고 하는 모든 재앙을 들으면 악한 짓을 멈추고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내가 그들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겠다."
4 그래서 예레미야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불렀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주신 모든 말씀을 불러 주었고 바룩은 그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받아 적었습니다.
5 그런 뒤에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갇혀 지내는 형편이라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갈 수가 없다.
6 그러니 네가 여호와의 성전으로 가라. 백성이 금식하는 날에 성전으로 가서, 유다 여러 마을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백성들에게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읽어 주어라.
7 그러면 그들이 여호와께 기도하고 악한 짓을 멈출지도 모른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향해 말씀하신 진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8 그리하여 네리야의 아들 바룩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명령한 대로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적힌 여호와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신에게서 들은 말씀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하신다.
그 이유인즉슨 그들이 그 말을 듣고 회개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 일을 바룩이라는 사람을 통해 행한다.
적힌 여호와의 말씀을 바룩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읽었고 이를 들은 미가야는 다시 이를 모여 있던 신하들에게 전해 주었고 신하들은 다시 바룩을 불러 그 적힌 내용을 다시 읽게 했고 이를 왕에게 꼭 전해야 되겠다고 하고 있고...
기록이라는 것의 강력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문자화 되었기에 언제든 정확히 반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우리에겐 너무나 가까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있다. 그 고마움을 너무 못느끼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록된 말씀은... 내게 뿐 아니라 그 누군가들에게도 오늘 같은 전파력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난 과연 누군가를 위해 말씀을 소리내어 읽은 적이 있었나를 돌아보게 된다. 한 며칠 아들을 위해 읽어주던 성경도... 안읽어준지 꽤나 됐다. 주혁이는 10시가 훨씬 넘어야 잠을 자기 때문에 어떨 땐 11시도 넘긴다. 드라마에 빠져있는 나로선 성경을 읽어줄 시간이 참 없다. 그러면서 난 나름.. 주혁이가 성경을 자꾸 찢으려고 달려드니... 성경이 이러다가 다 찢어지겠어... 그러니 어쩔 수 없어...라는 이유로 위안?을 삼으면서... 안읽어주고 있는데...쩝.

여하튼...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이렇게 잘 기록해 주셨다는 것에 무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큐티를 기록하는 것도 내 삶에서 게으름 없이 잘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누가 그랬다. 큐티의 생명은 기록이라고...

하나님 오늘 말씀에선 예레미야에게 내가 요시야가 왕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했던 모든 말을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유다 집안이 그 기록된 말씀을 다시 듣고 악한 짓을 멈춘다면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도 같은 이유임을 느낍니다. 우리에게도 분명한... 변경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룩이 읽어서 사람들이 듣고 뭔가를 느꼈듯이 우리의 입을 통해서 읽혀질 때... 그 강력함이 듣는 이에게도 임하길 원합니다. 모든 이를 구원하시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큐티를 기록함으로 제게도 말씀의 기록들이 제 삶에 어느 때든 강력함으로 임하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5:2 "예레미야야, 레갑 사람들의 집으로 가거라. 그들을 여호와의 성전으로 초대하여 어느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여라."
6 그러자 레갑 사람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너희와 너희 자손은 절대로 포도주를 마시지 마라.
7 또한 너희는 집도 짓지 말고 씨를 심거나 포도밭을 가꾸지도 마라. 너희는 그런 것들을 소유하지도 마라.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서만 살아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나그네로 사는 땅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8 그래서 우리 레갑 사람들은 우리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1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예레미야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백성에게 전하여라. '너희는 나의 교훈을 받아 내 말에 순종하여야 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자기 아들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령했고, 그 명령은 지켜졌다. 오늘까지도 요나답의 자손은 조상의 명령에 순종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거듭해서 명령했으나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18 그런 뒤에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 조상 요나단의 명령에 순종했고, 그의 모든 가르침을 따르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다 지켰다.
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섬길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이 언제까지나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제 오늘 계속 듣게 되는 말씀이 순종이라는 단어이다. 순종이라는 말씀이 내 귀에 반복적으로 그것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의미있는 단어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내게 지금 부족한 것이 순종이고 하나님께서 지금 순간 내게 원하시는 것 또한 순종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모랄까? 우리의 순종이 뒷받침??될 때 그 능력을 가시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레갑 사람들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에게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레갑 사람들은 조상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걸 지금까지 지키는데 너희는 나의 거듭된 명령에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순종을 가르치고 계신다. 그리고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레갑 사람들에게 축복하신다.
난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오래? 기다리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계속 잘 지키는 것은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잠깐 기다리는 것엔... 나름 믿음이 있는 것 같고, 빤짝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그런대로 잘 할 것 같은데.... 그것이 내 생각에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영락없이 형편?없는 모습이 되곤 한다. 물론... 그럴 때라도 남들에겐 꽤 믿음있는 척은 할 수 있고, 계속 말씀을 잘 지키는 척은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무엇이 레갑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조상의 명령에 오래도록 순종하게 했을까? 그 비결은 무엇이였을까? 그들은 원래부터 도덕성을 타고 나서 그런걸까? 궁금해 진다.
여하튼... "너희는 나의 교훈을 받아 내 말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순간 생각나는 말씀인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이 말씀에도 순종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믿고 안믿고는 우리의 권한밖의 일인 것 같은데... 순종은 우리 권한안에 주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권한안에 주신 이 순종을 바로 할 때 하나님의 권한안에 있는 믿음도... 기적도 거저?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제게 필요한 것이 순종이라고 말씀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순종할 때 믿음도 유지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리고 성을 매일 도는 것이 너무 단순하고 뜬구름잡는 행동같을 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앞에 순종으로 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순종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3:14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약속한 선한 일을 이룰 날이 오고 있다.
15 그 날이 오고 그 때가 되면 내가 다윗의 집안에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겠다. 그는 이 땅에서 옳고 의로운 일을 할 것이다.
16 그 날에 유다는 구원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살 것이다. 그 가지는 '우리의 의가 되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20 "나 여호와가 말한다. 내가 낮과 밤과 더불어 언약을 맺어 언제나 낮과 밤이 정한 시간에 오게 하였다. 너희가 만약 그 언약을 바꿀 수 있다면,
21 내가 내 종 다윗과 레위 사람들과 맺은 언약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내 종 다윗의 자손이 보좌에 앉아 왕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며 레위 집안이 제사장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22 그러나 하늘의 별이 너무 많아 셀 수 없고, 바닷가의 모래를 측량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내 종 다윗과 나를 섬기는 레위 집안에서 많은 자손을 주겠다."

약속한 선한 일을 이룰 날이 오고 있다고 하신다.
그 날... 그 때...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랑 믿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이랑... 믿지 못하면서 기다리지도 못하는 사람이랑...
그 날과 그 때를 맞는 그 체감은 참 다를 것이다.
무언가를 기다릴 때... 처음엔 믿고 기다리다가 점점 믿지 못하고 기다리게 되고... 다시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 후에 그 날과 그 때를 맞게 될 땐...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게 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낮과 밤과 더불어 언약을 맺어 언제나 낮과 밤이 정한 시간에 오게 하였다고 하신다. 그리고 만약 그 언약을 바꿀 수 있으면 다윗과 레위 사람들과 맺은 언약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 이것도 어찌보면 언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난 그렇다면... 낮과 밤에 대한 규칙?만큼 신뢰하고 있는걸까?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능력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신뢰하게 도와주세요. 선한 일을 이룰 날... 그 선함이라는 것이 어떤 형식으로 임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선하다고 생각하셔서 하실 그 일은 반드시 이뤄질테니 잘 기다리고 잘 맞을 준비를 하면서 살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3:1 예레미야가 아직 경호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일을 계획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 주겠다.'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빌로니아 군대의 공격을 막으려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의 집들과 유다 왕궁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5 '그들이 와서 바빌로니아 군대와 싸웠으나, 나의 분노와 진노 때문에 이 성은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 찼다. 나는 그들의 온갖 악한 짓 때문에 이 성을 저버렸다.
5 그러나 보아라. 내가 이 성 백성을 치료하여 낫게 해 주고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겠다.
7 이스라엘과 유다를 옛날처럼 회복시켜 주겠고 다시 세워 주겠다.
8 그들이 나에게 죄를 지었으나 그 죄를 씻어 주겠다. 악한 짓을 하고 내게서 등을 돌렸으나 용서해 주겠다.
10 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말하기를 '이 땅은 사람도 살지 않고 짐승도 살지 않는 황무지가 되었다'라고 한다. 지금은 예루살렘 거리와 유다 마을들이 조용하다. 사는 사람도 없고 짐승도 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곳에 다시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11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 신부의 기뻐하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백성들이 감사의 표시로 여호와의 성전에 제물을 가져와 바치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여호와는 좋으시다. 여호와의 사랑은 영원하다'라고 할 것이다. 내가 옛날처럼 이 땅을 회복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12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곳은 황폐하다. 그 모든 마을에 사람도 살지 않고, 짐승도 살지 않는다. 그러나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목초지가 생길 것이다.
13 산지 마을들과 구릉 지대의 마을들에서, 유다 남쪽 네게브의 마을들과 베냐민 땅에서, 그리고 예루살렘 주변과 유다의 다른 마을들에서 목자들이 자기 양 떼의 수를 셀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요며칠 불안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때문에... 남편이 실직한지 벌써 네 달이 훌쩍 넘었다. 사실 처음 실직소식을 들었을 땐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었고 어떤 의미에선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것도 진심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지내면서도 그렇게 걱정이 된 건 아니였다. 하나님을 믿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근데... 워낙이 경기가 좋지 않은 편인데다가... 여하튼...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의 시점에선... 생계를 생각하면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미래에 대해서 요며칠 걱정이 생겼었다. 
그동안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그걸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어깨가 무거워졌다는 것...
아이를 보면서... 아주 잘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잘 뒷바라지해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기면서 말이다.  

오늘 말씀은 익히 들었던 말씀이다. "일을 계획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주겠다고...
그리고는 나의 분노와 진노 때문에 이 성은 죽은 사람들의 시체로 가득찼고 악한 짓 때문에 이 성을 저버렸지만... 내가 이 성 백성을 치료하여 낫게 해 주고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해주겠다고... 옛날처럼 회복시켜 주겠고 다시 세워 주겠다고... 나에게 죄를 지었으나 그 죄를 씻어 주겠다고... 악한 짓을 하고 내게서 등을 돌렸으나 용서해 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이 곳은 황폐하나... 모든 마을에 사람도 살지 않고, 짐승도 살지 않지만... 목자들이 양 떼를 쉬게 할 목초지가 생길 것이고... 각 마을들에서 목자들이 자기 양 떼의 수를 셀 것이라고...

하나님은 그들이 죄를 자복하고 철저히 회개한 것이 아님에도 그들을 먼저 용서해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이 황폐함 중에 있지만... 자기 양 떼의 수를 셀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신다.
그리고 어제 말씀에선... 내가 약속한 모든 좋은 일들을 이루겠다... 언제나 그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겠다고... 나를 존경하는 마음을 주어서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이런 류의 말씀은... 어쩜... 하나님이 즐겨 하시는 말씀이긴 하다. 
근데... 그럼에도 내가 이 말씀을 그저 늘 하시는 익숙한 말씀으로가 아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바라는 것들이 실상으로 나타나는... 성취된 현실로 맞아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며칠 가졌던 걱정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제부터 주시는 말씀으로 어느 정도는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전화위복이 되어... 기도하는 아내를 둔 덕을 우리 남편이 톡톡히 느끼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고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저희 가정에도 일을 계획하시고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여 주세요.  그것이 외형상이든 내면상이든 부족함이 없는 감사함을 누릴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2:33 그들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도리어 내게서 등을 돌렸다. 내가 쉬지 않고 그들을 가르치려 했으나 그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34 그들은 내 이름으로 불리는 성전 안에 역겨운 우상들을 놓아 두어 그 곳을 더럽혔다.

그들의 죄에 대해 지적하고 계신다.
그들은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 보기에 악한 짓만 일삼았다고 하신다.
왜일까?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들을 섬겨서 하나님을 분노케 했다.
왜일까?
그들에겐 뭔가가 부족해서 우상이 필요했던 것일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그들이 우상을 만들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 바라기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게 도와주세요. 등을 돌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쉬지 않고 가르치시는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법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2:17 "아! 주 여호와여, 보십시오. 주께서 주님의 크신 능력과 펴신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주께서는 무엇이든지 못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24 보십시오. 마침내 적군이 이 성을 점령하러 와서 성벽 꼭대기에 이르는 흙길을 쌓고 있습니다. 이 성은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것입니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이 성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전쟁과 굶주림과 무서운 병이 닥칠 것입니다. 주께서도 지금 보고 계시듯이 주께서 말씀하신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5 하지만 주 여호와여, 주께서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곧 이 성을 점령할 텐데도 저에게 밭을 사고 증인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 하나님은 위 말씀처럼 크신 능력과 펴신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무엇이든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여전히 믿는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신 분이시면서도... 모랄까... 생각보다 그분은 무엇이든지 내게... 내가 생각하는 제때에 해주시는 편도 아니시고 안해주시는 것도 많으신 편이다. 그래서 그분은 내가 믿고 싶어하는 것보다는 나한테는 때때로 못하시는 것들이 꽤나? 많으신 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해주시는 것이지만 말이다.
나는 요즘 "하나님 지금 해주세요~" 기도하고 있다.
물론 그 분대로 다 나름에 이유가 있고 나중에 보면... 다 그 이유들이 옳았지만... 
언제나 조급한 나에 비해선 그분은 늘 여유로우시다. 그 여유가 내겐 모랄까? 그나마 있는 내 믿음을 갈가먹는다고나 할까? 
내 조급함이 그분의 여유를 앞서버릴 땐 난 영락없이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되고 만다. 마치 모래위에 집을 사람처럼...
여하튼... 기도하면서... 견고하지 않은 믿음을 가진 나로서는 이런 하나님의 여유로우심이 여간 답답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쩜... 지금이 그러려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25절 말씀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주 여호와여, 주께서는 바빌로니아 군대가 곧 이 성을 점령할 텐데도 저에게 밭을 사고 증인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제 생각에는 지금이 딱 적당한 시기이고 지금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런 저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일치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실... 혹 하나님과 내 생각이 틀릴 때 내 바램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을 변화시킬 필요성이 있나는 생각해 보면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 무엇보다도 제가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간구나 바램이 하나님이 베푸시고자 하는 것들과 일치되어 나타나길 원합니다. 도와주세요. 제 마음을 다스려주시고 제 생각을 다스려주세요. 지금 제겐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일어도 괜찮은 그 믿음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또한 구원의 복을 모두가 받게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1:13 그 때에 젊은 여자들이 기뻐하며 춤을 추고, 젊은이와 늙은이가 함께 즐거워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고통 대신 기쁨과 위로를 주겠다.
14 제사장들은 살진 제물을 넉넉히 얻을 것이며 내 백성은 내가 주는 좋은 것으로 배부를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앗수르에 멸망하여 지금은 바벨론 포로로 가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주시고 계신다.
너희가 그 때에는... 내가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고 고통 대신 기쁨과 위로를 주실 것이라고... 내가 주는 좋은 것으로 배부를 것이라고...
그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얼마나 기쁨을 주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쩜 이상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 희망이 말씀이 그들에게 큰 힘과 기다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러라고 이런 말씀을 주셨지만... 만약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디게 온다고 느껴질 땐... 그들에겐 더 힘들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도 그렇고... 임신도 그렇고... 어쩜 내 삶에 모든 부분들이 그랬던 것 같다. 내겐 어느 하나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이루어진 것들은 없었던 것 같다. 항상 하나님은 너무나 늦게 무언가를 해주시는 편이셨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내게 늘 희망의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그 희망의 말씀 때문에 힘이 나기도 했지만.. 때론 너무 더디다고 느껴질 땐 그 희망의 말씀 때문에 더 힘이 들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게도 기다릴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그 희망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주신 것 때문에 불평을 했던 것 같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과연 이들은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 말고 다른 크리스챤들은 과연 어떤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쩜... 요며칠 희정이랑 나눈 말씀들도 이와 같은 맥락들이 아닌가 싶다.
여하튼 참 이상하다. 왜 우린 하나님이 일해주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힘이 드는 것일까?
하긴... 그 시간은 진짜 그냥 기다리긴 쉽지 않은 시간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기다림의 시간들이 오래되어 지침을 경험하게 되면서... 요즘엔 어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곤... (요즘 내가 기도하는 것 우리 남편의 새 직장구하는 것과 우리 식구들의 구원 등) 그 기도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올바른 의뢰가 아닌...일종에 포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기도에 대한 포기... 긍정적인 포기가 아닌 부정적인 포기말이다. 이 포기는... 모랄까? 어떤 면으로는 하나님을 참 신뢰하는 것처럼 외형적으론 보일 수도 있긴 한데... 실상은... 의심에 찬 기도라고나 할까??

찾아보니... 오늘 이들이 했던 바벨론 포로생활은 70년이란다. 70년이라니... 휴...
내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기다리는 시간은 10년, 광야를 헤메고 돌아다닌 시간 40년... 진짜 장난 아니게 긴 시간들이다.
난 우리 주혁이를 만나기 위해 4년정도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난 정말 많은 불평을 했었고... 참 많이 울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내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거라고...물론 난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떨 땐 이런 생각도 했었다. 이 아기를 하나님께 받치겠다고 해야 한나에게 주셨듯이 나한테도 아들을 주실까하는 생각...   
여하튼 주신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타이밍에 응답이 없을 땐 혼자서 배신감??도 느꼈었다. 여하튼... 하나님의 타이밍은 참 더디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셨던 희망과 위로의 말씀이 그들에게 얼마나 위로와 희망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도 늘 희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씀 때문에 희망과 위로를 얻기 보다는 그 말씀 때문에 혼자 낙심했던 적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에 있어서 그 더딤을 불평하지 않게 하시고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하나님의 더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구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더딤이 모든이를 구원하실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가 :  사람들은 기다림이 길어질 때... 그래서 지칠 때... 이런 위로를 해준다. 
"하나님이... 너를 더 사랑하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기다리게 하시는거야."
근데... 이 말이 진짜 맞는 말일까?
신앙의 횟수가 더하면서 내 삶의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서... 사실 위 말은 사실일수도 있지만... 아닐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된다.
예전에... 기다릴 때 이런 환상?을 가지면서... 기다렸는데.... 사실...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것들을 주실 때가 많았었다. 
여하튼.. 모랄까? 표현하긴 힘들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갖고 있는 것이나 렘프의 요정 지니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하면 맞으려나? 하나님이 좋은 것과 우리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견해차이가 많아서... 우리가 하나님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이상... 만족한 삶을 살 수 없다는... 뭐... 그런 것을 점점 알게 되는 것 같다.
렘31:1 "나 여호와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내가 모든 이스라엘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2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3 옛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7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옛날에도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점에선 우리는 옛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지금도 들을 수가 있다. 언제나? 들을 수 있는 말씀의 가치를 늘 인정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붙잡는다.
"나 여호와가 말한다. 그 날이 오면 내가 모든 이스라엘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요즘 들어 주의 복음이 모든 이들에게 영향력 있게 미쳐지길 소망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모든 이들에게 나의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길 기도한다.

하나님 그들에게 회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옛날에도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이고 지금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옛날에 들었을 때와 지금 들었을 때 받아드리는 입장에선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때든 늘 가치있게 다가오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과 반응에 민감할 수 있게 깨어있게 도와주세요.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이들이 구원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제 주변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 그들에게 나타나주시고 드러내 주셔서 그들로 구원에 이르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렘30:17 그들이 너를 가리켜 '버려진 자'라고 하며, '아무도 시온을 찾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내가 너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네 상처를 고쳐 주겠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19 .. 내가 너희를 존귀하게 하여 아무도 너희를 얕보지 못하게 하겠다.

네 죄가 너무 크고 허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상처를 치료할 수 없고 부상을 고칠 수도 없고... 여하튼 그래서 이런 벌을 네게 내리신 것이라고 하신다. 
근데... 때가 되면... 다시 건강하게 만들고 네 상처를 고쳐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게다가 내가 너희를 존귀하게 하여 아무도 너희를 얕보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존귀...
참 중요한 것 같다. 자주는 아니였지만... 극도로 자존감이 없어질 때가 있었다. 분명 나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극도로 자존감이 떨어져서 하나님의 도움에서 단절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오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우리로 존귀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아무도 얕보지 못하게... 
어떤 면에선 사단은 우리가 존귀함을 잃어버릴 때 찾아와서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존귀함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어느 상황에 있든지...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난 존귀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하나님이 내게 존귀함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존귀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존귀을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존귀에 걸맞게 살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나를 존귀하게 여길 수 있게 도와주세요. 구원이 모든 이들에게 미치길 소망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30: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한다. 예레미야야, 내가 너에게 한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여라.

내가 너에게 한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고 하신다.
기록...
기록하고 그는 생각날 때마다 봤을까? 그리고 그걸 다시 가르치고 가르치고 했을까?
그러라고 기록하라신걸까?
여하튼... 내게도 말씀의 기록들이 있음에 감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들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록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주시는 말씀들과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기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기록들이 제 삶에 유익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를 읽는 누군가에게도 유익함으로 돌아가길 원합니다. 구원의 복이 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미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29:30 그 때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1 "바빌론에 사는 모든 포로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있으나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는 너희에게 거것말을 믿게 하고 있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곧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겠다. .....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이제야 큐티를 한다. 사실 아까 큐티 말씀을 읽긴 했지만... 그닥... 남길 말씀도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워드치긴 패스하려고 했다. 그리곤 이웃집들을 한바퀴 돈 후 로그아웃까지 했다. 근데... 마음을 바꾸고 로그인하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큐티는 워드치기 작업을 통해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늘... 말씀을 읽을 땐...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뭘 깨닫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없고... 근데... 늘... 내 생각은 신기?하게도 워드치기와 함께 형성?되곤 한다. 모랄까? 이끌림의 워드치기라고 해야 할까?

스마야는 듣지도 않은 말들을 마치 하나님께 들은 양 예언을 해서 사람들로 거짓말을 믿게 하고 있다. 게다가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스스로 예언자 행세를 하고 있는데도 그를 혼내 주지 않고 있다고 듣는 이들을 책망하고 있다.
근데... 하나님은 그 때에...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레미야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신다.
예레미야가 맞고 스마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오늘 말씀을 통해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워드치기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내 밥을 끼니가 되었을 때 내 밥숱가락으로 밥을 떠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떠먹어줘야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말고... 숱가락질도 못해서 누군가 떠먹여줘야 살 수 있는데... 때론 그것이 독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먹어야 하니깐.. 먹는 사람이 아니라... 물론... 누군가 정말 맛좋은 음식을 내게 건넬 땐 그것도 잘 먹을 수 있긴 해야겠지만...
여하튼... 숱가락질을 가르쳐 주셔서 이미 배워서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가 되어야 하는 건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시점에서 잘 듣고,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 시점에... 하나님 말씀이 내 귀에 잘 들렸으면 좋겠다. 애매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듣는 게 제일 쉽다고 누구나에게 고백해도 그 말이 거짓말이 늘... 아니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큰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멀리 있다거나 특정 누군가에게만 있지 않고 우리 각자에게 너무나 가까이 임재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말씀듣는 것이 제일 쉽다고 고백할 때가 제 삶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근데... 그런 시점들이... 지속적이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바라기는 그 시점들이 제 삶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27:18 그들이 정말 예언자라면, 그들이 정말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다면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 안에 남아 있는 물건들과 유다의 왕궁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들을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위 말씀이 무슨 의미의 말씀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거짓 예언에 속지 않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어떤 것들이 거짓 예언인지 잘 분별할 수 있는 분별의 영을 허락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아무 말에나 미혹되지 않게 저를 지켜주시고 제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주세요. 모두가 구원에 이르게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27:9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바빌로니아 왕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거짓 예언자나 점쟁이나 꿈의 뜻을 풀어 주는 사람이나 무당이나 마술사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라.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며 너희를 고향 땅에서 멀리 쫓겨나게 할 뿐이다. 만약 너희가 그들의 말을 들으면 내가 너희를 고향에서 쫓아 낼 것이고, 그러면 너희는 다른 나라 땅에서 죽을 것이다.
11 그러나 스스로 바빌로니아 왕의 지배를 받고 그를 섬기는 민족은 내가 그 고향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대로 살게 할 것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다."

요며칠 사무실 식구 중에도 점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것을 보신 분이 계셨다. 점심을 먹으면서 내게 상세히? 이야기 해주셨다. 본인은 믿지는 않고 갔지만... 여러사정으로 인해 가게 되었고... 여하튼... 그분은 적어도 그분 생각에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은 듯 싶다.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혹하면서 듣기 보다는... 아하... 그래요? 그러면서 그냥 잘 들어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길 남편에게 했더니만... 우리 남편은 혹하면서... 거기 어딘지 알아오라나? 그래서 말을 싹뚝 자르면서 하나님이나 믿어 그랬다.
다른 사람말고라도 왜 우리 남편은 그런 점쟁이를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고 싶어하는걸까? 구체적이라서? 명확해서? 
여하튼 우리들은 누군가로부터 문제의 답을 듣고 싶어한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면서 명확하게... 그리고 큰 산을 만나면 좀더 쉽게 그 산을 넘는 방법을 알고 싶어한다.
바라기는 그것이 누구라든... 문제의 답을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께 듣는 것이 실제적으로도 가장 쉽고 명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어쩜.. 은연 중이라도... 나 역시도 호기심을 가졌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랄까? 이 말씀이 우연한?? 큐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우리 주변엔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듣고 싶을 때 그들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럴 때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오길 원합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할 때 그 음성 듣는 것이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답을 하나님께서부터만 찾을 수 있게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26:20 그 무렵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기럇여아림 사람,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였습니다. 그는 이 성과 땅을 향해 예레미야와 똑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23 그들은 이집트에서 우리야를 붙잡아 여호야김 왕에게 데려왔습니다. 여호야김은 우리야를 칼로 쳐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귿르은 우리야를 죽여 그 시체를 보통 사람들의 무덤에 내던졌습니다.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 주었습니다. 아히감은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것을 막아 주었습니다.

예레미야와 똑같은 말씀을 전한 예언자가 있단다. 우리야...
그런데 그는... 그런 예언을 해서 죽임을 당했다. 우리야의 기분은 어땠을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모르긴 몰라도 그 스스로는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보이시는 것에는 일치성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의 동일성...
물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받아드리지 못하는 자들에겐 그들이 만들어 놓은 별개의 하나님의 뜻이 이미 존재해서 실제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일치할 수 없지만... 그래서 분열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들에겐 그 응답은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또 있다면... 그건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안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구했는데 서로 다른 응답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근데 더 큰 문젠 어느 한 편도 양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양보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맹신?하기에...
어쩜 남말할 것이 아니라 나도 그런지 모르겠다. 이건 하나님의 뜻이야... 라고 견고하게 붙잡고 있어서 진짜 하나님의 뜻에는 등한시하게 되는... 
하나님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그의 뜻에 순종치 않고 악을 행한 그들에게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온은 밭을 갈듯 뒤집힐 것이며,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로 바뀔 것이며, 성전 언덕은 수풀만 무성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바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정해 놓고 듣지 않으면서 이미 들었다고, 모르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내 뜻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확신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제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렘26:3 혹시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킬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돌이킨다면 그들의 악한 짓 때문에 재앙을 내리려 한 나의 생각을 바꾸겠다.
4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준 가르침을 너희는 지키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
5 너희는 내가 거듭해서 보낸 내 종 예언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6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이 성전을 실로에 있던 성막처럼 무너뜨리겠다. 예루살렘을 세계 모든 백성의 저주 거리가 되게 하겠다."
11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유다의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을 향해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귀로 직접 들었듯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 대해 좋지 않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패턴을 보면 항상 기회를 주시는 것 같다. 악한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말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고 화를 당한다.
왜 그들은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기회를 주심에도 회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로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완고한 마음?
나는 과연... 잘못된 길을 가다가도 이런 경고의 말씀이 들려올 때 잘 듣는 편인가? 듣고 돌이키는 편인가?
글쎄... 난 이 질문 앞에.. 난 잘 듣고 잘 돌이키는 편이라고 선뜻 대답이 안나온다. 왜일까?
어제 말씀에도 있었는데 오늘 말씀에도... 그분의 가르침은 지켜야 할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하신다. 근데 문젠 난 그 목적에는 사실 그다지 관심이 있다기 보단... 그냥 가르침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거라도 있는게 어디겠냐만... 사실 이 둘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내가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까?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예레미야는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지 않은 예언을 한다고...
제사장, 예언자...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 이름에 걸맞지 않아서 문제겠지만...
근데 문젠 그들이 그 타이틀을 가지고 스스로를 높게 평가해 버려서 남들도 그들을 그렇게 높게 평가해 줘야 한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용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을 스스로에게 부여해 버린 우월성? 때문에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 신앙에 있어서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그건 어느 때부터인가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내가 참 안됐다.

하나님 바라기는 제가 악한 길로 혹 가고 있을 때 돌이킬 수 있는 주님의 음성을 잘 듣길 원합니다. 듣고 마음과 행동을 돌이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가르침을 받는데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데에 이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제 마음에도 다시금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허락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있어야 할 것들인데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면 다시금 되찾길 원합니다. 인도해 주세요. 제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빛이 비춰져서 그 빛의 영향권안에 들어오길 원합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8:18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보아라.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제자로 삼아라라고 말씀하신다. 제자로 삼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들을 포함하는걸까?
말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하시는데... 이것이 제자로 삼는다는 것의 의미에 가까와지는걸까?
복음증거... 복음전파... 이걸 모랄까? 그냥 말씀전달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자로 삼는다는 것이나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나... 어쩜... 시간의 누적이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끊임없는 반복과 노력도 필요하고...
여하튼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증거는 훨씬 더 견고하고 시간의 노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걸 많이 간과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를 삶속에서 깨닫길 원합니다. 그리고 제 삶속에서도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고) 예수님이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칠 수 있게 이끌어 주세요. 그리고 저 역시도 제자가 되어 지키도록 가르치는 말씀들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 주변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7:54 예수님을 지키던 백부장과 병사들이, 지진과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고 매우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 이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예수님을 지키던 백부장과 병사들은 되어진 모든 일들을 보고는 매우 놀라면서.. 이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을 한다. 그로 인해 그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을까? 아님... 그저 순간의 앎으로 끝났을까?

하나님 사실 오늘은 큐티를 통해 딱히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위의 백부장과 병사들은 과연 이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을까는 궁금해 집니다. 당시에는 그런 깨달음은 있었지만... 그것이 순간으로 머무르고 지속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쩜 저의 삶도 무언가를 경험할 때나, 말씀을 접할 때의 순간의 깨달음이 순간에서 멈춰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깨달음이 삶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시길 원합니다. 구원의 복이 제 주변에 미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마27:42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은 구하면서, 자기 자신은 구하지 못하는구나!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겠다.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겠다.
그들은 그들이 믿을 조건을 요구했다.
어쩜... 위와 같이는 아니더라도 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내가 그 분을 하나님으로 믿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면서 그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예수님을 믿음에는 조건이 필요없음에도 우리가 만든 그 조건이 먼저 채워져야만 그분을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내 틀속으로 들어와주시길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을 믿겠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셔서 믿음이 곧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믿음을 받아드릴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래서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7:12 대제사장과 장로를 예수님을 고발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24 빌라도는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을 떠다가 사람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25 사람들이 한결같이 대답했습니다. "그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지겠습니다."
26 결국 빌라도는 바라바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게 한 후, 십자가에 매달도록 내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난 이런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과는 다르긴 하지만 때때로 살면서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나한테 덤텡이?라면 덤텡이를 씌울 적이 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 막 화를 내면서 그 화를 들어줘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난 그럴 땐... 그게 그리 억울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면 그냥 살짝 웃거나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다. 마치 내가 그래서 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면... 그런 상황에서 굳이 변명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뿐더러... 그 상대로서는 누군가에게 풀긴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되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과 나중에라도 혹여 그들이 엄한 사람을 잡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내가 참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경험상 깨달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제3자로 봤을 때도 그 상황에서 굳이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은 모랄까?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변명같아 보여...참 없어보인다고 생각하기에... 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여하튼... 예수님의 이 상황에서의 침묵은... 이 침묵은 내가 하는 침묵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금보다 귀한 침묵으로... 정말 있어보이는 침묵이신 것 같다. 참 있어보인다. 캬~~

빌라도...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사람들... 자신과 자신들의 아이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큰 소리친다.
둘 다 참 없어보이는 행동이다. 근데... 후자들이 책임을 지긴 졌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침묵이 가지는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나님 저도 살면서 침묵이 필요할 때 침묵할 수 있는 지혜와 절제심을 허락하여 주세요.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때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책임을 질수도 없으면서 책임지겠다고 허세에 찬 말은 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7:3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는 예수님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을 보고,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4 유다가 말했습니다. "내가 죄없는 피를 팔아 넘기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너의 문제다."
5 유다는 은화를 성전 안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유다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은 삼십 개를 돌려주려고 했지만... 그들이 받지 않아 은화를 성전 안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자살을 했단다.
왜 유다는 자살하는 것을 선택했을까? 그가 회개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회개했다면... 혹시 그도 베드로처럼 쓰임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니였을까? 혹시 그는 베드로의 세번 부인하는 잘못보다도 더 어마어마한 죄를 진 것이기에 회개하고 용서받았다면 어쩜 더 크게 사용될 수 있었던 건 아니였을까? 
근데 여하튼 유다는 자살을 선택했다. 당시에도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자살이 팽배??해 지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그리스도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는데... 내 기억속에도 옛날 다니던 교회에 언니였는데 봉사도 참 많이 하고 나랑도 어느 정도는 친분이 있던 언니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했다고 들었다. 왜일까?
십계명에 있는 살인하지 말라는 자신의 목숨도 포함된 것으로 들었다. 어떤 경우에든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들었다.
아무튼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자살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그런 선택을 하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이 땅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적어지게 하시고 그들에게 죽고자 하는 순간의 마음이 들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려고 하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앎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악한 영들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성령이 곳곳마다 임재하길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곳곳마다 하나님을 아는 복이 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6:70 그러자 베드로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라며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72 또다시, 베드로는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라고 맹세를 하며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74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를 하며 맹세했습니다. "나는 저 사람을 모릅니다." 그러자 바로 닭이 울었습니다.
75 베드로는 지난번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습니다.

위 말씀은 참 익숙?한 말씀이다. 베드로의 수제자 삶에 거대한 오점인 사건...
근데 오늘 큐티를 통해서는 왜 베드로가 부인을 했을까가 궁금해진다. 두려움? 그게 단가??
사실 이렇게까지 부인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됨에도 그는  마치 자기 목숨이 달린 것처럼... 참 오바하면서 부인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그런 상황이었나??) 
예수님의 체포? 그것이 그에게 준 충격과 상실감이 너무 컸던 건 아니였을가? 그분은 계속적으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될 것을 가르쳤지만... 이를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로서는... 적어도 모든 것을 버리고 쫒았던 그분인데... 그분이 잡혀갔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들로 무능력자?가 되어버리게 하였던 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베드로... 그의 부인이... 어떤 면에서는 전적인 그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그를 일부러 넘어지게 하면서 그로 인해 더 큰 깨달음을 주실 의도에 따라 그가 부인했다고 확대해석하는 건 좀 그렇겠지만... 그에게 있어서의 이 사건이 그의 삶에 얼마나 큰 깨달음과 성장... 겸손함으로 작용했을지는... 

하나님 오늘 큐티를 통해서는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쩜 나의 하나님을 향한 정체성이란 것이 내 눈에 보여지는 것들로 형성되고 있어서 눈에 보여지는 상황이 조금만 돌변해도 상실감을 크게 느끼면서 하나님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믿는 것이 상황인지 하나님인지를 돌아보게 하시고 견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 혹여 제가 잘못 살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고칠 수 있게 인도해 주세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6:38 예수님께서는 세 제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여기서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39 그리고 나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
40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제자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41 깨어서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영은 원하지만 육체가 약하구나"
4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놔 두고 다시 세 번째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기도를 한 번 더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일 때 예수님은 그의 제자 셋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저 여기서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달라는 것 뿐이였다. 어찌보면 참 쉬운 요구라고 생각되는데... 여하튼 깨어 있는 것조차 잘 하질 못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질책했다기 보다는 그런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영은 원하지만 육체가 약하다라고 진단?하시는 것 같고...
같이 머무르며 함께 깨어 있어준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어찌보면 참 별거 아닌 듯하지만 그 위력은 참 대단한 것 같다. 그것이 예수님이건... 아니면 우리 이웃이건... 사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것은 어찌보면 유창한 말도... 대단한 호의도 아니고... 어쩜 단지 그저 같이 머무르며 함께 깨어 있어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돌아보았을 때도 내가 힘들고 지쳐서 낙심되어 있었을 때 내게 있어 가장 큰 힘은 어쩜 어떤 거창함?이 아닌 그저 예수님이 여전히 함께 하시고 계신다는 그 존재감이 아니었나 싶다. 내 이웃을 통해 얻은 위로나 힘도... 역시 유창한 말이나 대단한 도움이 아닌 그저 옆에 함께 있어주는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
여하튼 이제부턴 함께 머무르며 함께 깨어 있어주는 것을 잘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도... 이웃에게도...

아참... 처음 큐티를 할 적엔 왜 예수님은 동일한 기도를 굳이 3번 하셨던 것일까에 의문이 들었었는데... 위의 내용으로 하다보니... 이건 패스. 근데 궁금하긴 하다. 적어도 예수님이라면... 했던 기도 또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데...


하나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저랑 같이 함께 머무르며 깨어 있어주시는 것 맞죠? 고맙습니다. 저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당신의 존재감을 저 역시 깨어서 함께 머무르며 느끼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내 이웃에게도 함께 머무르며 함께 깨어 있어주는 그 위대한 일을 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6:17 무교절의 첫 번째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말했습니다. "유월절 음식을 어디에다 준비할까요?"
1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 안에 들어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선생님께서 때가 가까웠으니, 당신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9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습니다.

오늘 큐티를 통해서는 유월절을 보낼 수 있게 자신의 집을 내준 성 안의 한 사람... 그는 누구일까에 관심이 가진다. 성경에는 그가 누구인지 언급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왜 이름이 아닌 그냥 한 사람이라고 적혀있는걸까?
여하튼... 그는... 자신의 집을 쓰겠다는 요구?에 노라고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모랄까? 추측컨데 그는 성령의 사람... 기도의 사람임에는 틀림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하나님의 어떠한 신호에도 토달지 않고 왜요? 묻지 않고... 즉각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음... 그러고 보니... 그냥 한 사람이라고 명명되어서 어쩜 그가 더 빛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나도 이렇게 때때로 멋지게 이름없이?? 잘 사용되어졌으면 좋겠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신호에도 토달지 않고 의문을 품지 않고 예라고 반응할 수 있는 순종적인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6:7 한 여자가 비싼 향유 한 병을 가지고 와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이 향유를 부었습니다.
8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이 화를 냈습니다. "왜 이 값비싼 향유를 낭비하는 것이오?
9 그것을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텐데"
10 예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그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11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12 이 여자는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나 이 행동을 해석하는 것이나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자들은 어느 하나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사실 제자들로써는 어쩜 당연한 해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왜냐면 어제 말씀에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구분을 말씀하시면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셨으니 그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로써는 이 여자의 행동이 낭비로 보여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고...
어쩜... 비싼 향유를 부었던 그 여자조차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진 못하고 다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단지 성령에 이끌려 했던 행동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여하튼 이 구분은 참 어려운 것 같다. 어떨 땐 가진 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주어야 하고 어떨 땐 그것을 모두 교회?에 드려야 하고...
요즘 모교회의 성전건축을 놓고 사람들은 견해차이를 가지고 다툼?이 있는 것 같다. 이 경우가 오늘 본문을 대변하는 경우인진 잘 모르겠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하튼 중요한 건... 하나님의 원하시는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렵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에... 서로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분열된 결과가 아닌 일치된 결과는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자신의 뜻을 배제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응답을 받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오늘 큐티를 통해서는 내 삶에선 그분의 지시를 그때 그때 받고 행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의 말씀... 그것만 붙잡고 그것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제의 말씀만 있고 오늘의 말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그 말씀이 오늘 지금의 말씀인지 다시 한 번 여쭙고 어제의 말씀을 오늘의 말씀으로 받았을 때 행동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는 길도 물어보라는 말이 있는데... 어쩜... 내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이 그 정도는 이미 안다고 생각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쩝.


하나님 어제도 큐티를 하고 그제도 큐티를 하고 1년 전에도 큐티를 하지만... 하나님 제가 과거의 말씀만 붙잡고 있지 않게 하시고 지금 현재 다시금 말씀해 주시는 그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나의 행동의 기초가 오늘의 말씀... 지금의 말씀이 되길 원합니다. 늘 들을 준비를 하고 살게 도와주세요. 그래서 어설프게 알고 있는 것으로 아는 척하면서 살지 않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25:32 그 때에 세상 모든 나라가 그 앞에 모일 것이며,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인자가 사람들을 나눌 것이다.
37 그 때, 의로운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언제 주님께서 배고프신 것을 보고, 우리가 음식을 주었습니까? 언제 목마른 것을 보고, 마실 것을 주었습니까?
38 언제 나그네 된 것을 보고, 우리가 초대하였습니까? 언제 헐벗으신 것을 보고, 우리가 옷을 입혀 주었습니까?
39 언제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또 아픈 것을 보고, 우리가 찾아갔습니까?'
40 그 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 곧 너희가 이 형제들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일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44 그 때, 그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주님, 언제 주님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거나, 헐벗었거나, 아프거나,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돌보지 않았습니까?'
45 그 때, 왕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이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두 부류로 나뉜 사람들은 각자 같은 질문을 왕에게 한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같은 상황속에 나를 대입?시켜 본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대답할 말이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님 그러고 보니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참 구체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들이 많음을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주님을 섬기는 일은 어떤 의미에선 참 쉽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행동하는 것은 말하는 것만큼 쉽진 않겠지만 말이예요. 그러나 하나님... 그것이 언제든 저로 행동해야 할 때 선뜻 행동할 수 있는 마음과 추진력을 허락하여 주기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